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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2. 2019

반정 (反正)

중종반정으로 공신에 오른 요산군

고고한 선비처럼 살고 싶은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서 권력과 돈을 쥐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걸 출세의 길이라고 보통은 부른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출세의 길에 오르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출세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권력의 근처에 갈 수 있는 법조인과 결탁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부 정치인들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본다. 보통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이나 발언이 이상해 보여도 그것이 바로 줄을 서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정권을 바꾸어주지만 알게 모르게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물밑작업은 다방면에서 진행이 된다. 관심이 없으면 그 흐름이 어떻게 가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것뿐이다. 과거 조선시대 등에서 일어났던 반정은 그런 권력의 교체와 비슷하다. 혁명과 다른 점은  왕조의 정통성은 유지한 채 왕위만 교체하는 것이므로 혁명이라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반정으로 인해 높은 벼슬과 재물까지 쥔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명명된 반정 사건은  1506년 9월 연산군을 축출한 중종반정과 1623년 3월 광해군을 축출한 인조반정이다. '반'(反)은 돌이킨다는 뜻으로 정통으로 돌아가거나 어긋난 정도(正道)를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반정일까. 세조는 단종을 죽이긴 했지만 살아생전에 선양받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반정이 아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령 청소면 죽하마을에 가면 보령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요산군 이기사당이 있다. 요산군 이기는 수안이씨 요산군파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보령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중종반정에 참여해서 정국공신 3등 공신으로 훈호인 요산군을 받게 된다.  요산군묘가 있는 죽하마을의 진죽리는 유적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진죽리 유적은 학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지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충남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취락과 통일신라시대 토기가마 등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는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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