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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4. 2019

관념론 (觀念論)

해저무는 탑정호 거기에 있다는 것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하고 나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개념적 틀이 주어진 것인지 생각할 때가 있다. 헤겔이 볼 때는 경험 이전에 개념적 틀이 주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세상의 관계에 대한 이해 등은 경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 미리 주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차이는 있다. 배경지식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풍부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찾아가 본 탑정호중에서 오늘이 가장 아름다웠고 정서적으로 공감이 되는 날이었다. 이제 딸기가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딸기의 향이 연상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간이 비록 정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적 욕구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지라도 기회만 되면 이기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간에 와서 그런지 몰라도 물에 비친 반영이 더욱더 뚜렷하다. 사물의 속성 또는 어떠한 사실이나 현상 따위가 다른 사물이나 사실, 현상 따위를 통해 드러내는 반영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물이다.  

탑정호가 이렇게 짙은 색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정도로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역시 와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비친 반영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하루다. 물은 움직이지 않는 듯 고요하고, 그 위에 붉은빛으로 단풍이 살아난 나뭇가지들과 줄기들이 물에 비친다. 하늘에 한 점 구름 없이 떠 있는 높은 하늘도 멀리 강물과 맞닿아 있다.

사유는 사실 너머 진실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앞에 보이는 풍광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유추하는 것을 사유라고 한다. 사유의 대표적인 방법은 역지사지다. 그 사실 너머의 것을 진실이라고 부르는 길로 나아가는 것은 때론 즐거운 생각의 영역이다.

어느 곳으로 걸어가도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갈대는 반수생 식물이어서 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면에 억새는 건조한 환경에도 강하여 산에서 주로 보게 된다. 옛날에는 지붕을 덮는 데 억새를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때론 약으로 쓸 때는 주로 탕으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쓰기도 했다고 한다.  

데크길을 돌아서 오니 철새처럼 보이는 새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저 앞으로 날아가 버렸다. 고요했던 물이 파동만 남기고 그 잔상을 그려내고 있다.  상황에 따라 생각하는 것에 따라 모든 단어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물리학자에게는 파동이라고 하면 빛을 연상할 것이다.  심리학자에게 파동은 타인에게 감응하는 그런 현상을 생각할 것이다. 아무렴 어떠하겠는가 이 순간에 느껴지는 파동의 느낌만 기억하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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