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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언론

마녀사냥의 장을 만들어내는 저널리즘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지 간에 한 사람의 생명이 자살로 막을 내린다는 것은 똑같이 비극적인 일이다. 태어난 이상 자신의 의지로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일반인의 자살은 주로 개인적인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유명인의 경우 공공의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설리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악플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는 식으로 도망가려고 하고 있다. 그 본질의 문제가 악플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물론 악플이 일부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설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드라마에 출연했는지 심지어 걸그룹 F(x)로 활동할 때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람대로 살 뿐이고 필자도 필자대로의 삶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어떠했든 어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든 간에 관심도 없고 시간도 없다. 가끔 기사를 써야 할 때 그 드라마나 영화가 어떠했는지 확인해보는 정도에 머문다.


무지한 사람들이 악플을 달 때에는 언론이 장을 만들어줄 때 가능해진다. 물론 개인적인 SNS에 이유 없이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악플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데에는 악성 언론의 역할이 크다. 이 사람의 행동이 이런 문제가 있으니 자 돌(악플)을 던져도 됩니다. 대신 던진 돌을 이용해서 다시 언론에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여파는 당신들이 책임지라는 식이다.


악성 언론이 안 없어지고 악화 언론이 양화 언론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바로 돈 때문이다. 정상적인 노력을 통해 언론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능력이 상당한 기자가 있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그런 기자들은 많지 않다. 글을 쓰지만 글에 비속어가 난무하고 논리적인 흐름마저 없는 글 투성이다. 글을 제대로 못쓰면서 돈은 벌어야겠으니 따옴표를 사용해서 인용해버리고 악플로 채워버리는 것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치고 자존감이 높다던가 자신의 커리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용기가 없지만 언론이 앞서서 마녀사냥의 장을 만들어주면 그 대열에 몰래 낄 수 있는 것이다. 자극적인 기사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많다. 전에 일했던 직장의 대표는 술자리에서 쓸데없이 연예인의 사생활을 마치 자신 주변의 인물의 이야기처럼 안주거리로 많이 언급했었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보수언론조차 그런 찌라시 같은 기사를 쏟아내는 현실에서 악성 언론은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답게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다운 기사를 쓰지 않고 공영방송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한다면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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