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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8. 2020

호산춘

문경 장수황씨 종가의 술

일본은 지역마다 유명한 사케가 있고 그 맛이 균일하던가 통일되지 않아서 지역마다 색다른 맛이 있다. 술 역시 전통으로 내려오는 가치가 있다. 한국 역시 양반가를 중심으로 한 종가에서 내려오는 술이 있었다. 보통은 전통주라고 불리던 그 술들은 1900년대 들어서 모두 사라지게 되는데 그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술에 주세를 매기기 쉽게 하며 우리의 전통을 없애기 위함이기도 했다.  가문마다 그 고유의 음식 맛이 있으며 장맛의 가치가 있고 거기에 술까지 대를 이어 전수해왔다. 

문경의 대표 술이 여러 개가 있지만 전통으로 치면 문경 호산춘만 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경북 무형 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호산춘은 신선이 즐기는 곡차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서천의 한산소곡주보다도 가격이 있는 편의 전통주다.  

전통주와 전통 장의 공통점은 모두 숙성에 의해 새로운 맛으로 탄생을 한다는 점이다. 숙성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담배 같은 것과 달리 술을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산춘은 시대에 따라 병의 디자인도 바뀌어 왔다고 한다. 물론 설 명절이나 이런 때에는 맞게 병이 제작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병의 형태는 전통적인 문양에서 생산해서 공급하기 좋은 디자인으로 바뀌어 왔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병의 형태는 한산소곡주의 병 모양과 비슷하며 명절 때 제사상에 올리는 차례주와도 비슷한 디자인이다.  

옛 문경지역은 상주목 관할이었다. 지역에서 세력이 큰 가문이었던 장수황씨 종가에는 상주 목사가 자주 들려 대접을 받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마셨던 호산춘이 너무나 맛이 좋아서 술독을 비웠다고 한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잠시 깨었을 때 요강에 든 그것이 호산춘인 줄 알고 마셨다고 할 정도로 맛이 생각나는 술이라고 한다.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호산춘은 대중적인 술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술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청와대에서도 직접 가지러 와야 되었다. 1990년에 주류제조면허를 발급받아 그 후부터는 술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수황씨이며 조선 시대 4대 명상(名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희는 24년간 정승을 지냈으며 그중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의 여러 치적을 쌓았다. 

황희의 아들 중 황치신(黃致身)은 중추부 판사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올랐고, 황수신(黃守身)은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그 후손이 문경에까지 자리한 것이다.  

 보통 전통주에는 주라는 붙지만 호산춘은 호산주가 아니라 춘이라고 붙었다. 그 이유는 맑고 깨끗하며 맛과 향이 뛰어한 귀한 술에 붙여주는 것이다. 당나라때 처음 생겨났는데 가양주중 맛이 좋은 것을 춘이라고 붙여서 주보다 맛이 좋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오래된 전통주중 춘자가 붙은 술은 북한의 벽향춘과 서울에 약산춘이 있었으나 그 명맥이 이어져 오는 술은 호산춘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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