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정의롭게 바라본 남자의 패착
한국의 정치사를 보면 선동적이었고 정의롭지 않으며 국민을 위한 정치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모두 돈이 있었다. 정치인과 언론의 유착은 공고했지만 그 공고함의 균열은 1990년대에 일어나며 이해관계에 의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지만 유일하게 검찰과 언론의 유착은 2020년에 들어서야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모든 법을 초월하여 정권을 지키기 위한 한국의 정보부의 역사는 박정희 정권 때에 출범하였다. 대통령의, 대통령을 의한, 대통령을 위한 중앙정보부는 오로지 정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고 쿠데타를 위해 집권한 주요 인물들이 부장을 역임했다.
군사정권 시대에 언론은 최고 집권자를 미화하기 위해 존재했고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다. 북한의 위협을 극대화하였으며 최고 집권자는 그 어떠한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냈고 부모세대에게는 유효하게 먹혔다. 그들은 언론인이나 학자, 검사, 판사 등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무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마시는 것만으로 소탈하다고 생각했다. 막걸리를 마시면 왜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지만 박정희가 시바스 리갈과 함께 제일 좋아했던 술임은 분명해 보였다. 영국의 시바스 리갈은 고급술이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고급술로 통했다. 당시에도 영국에서는 글렌리벳이나 글렌모렌지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가 고급술로 취급되었다. 시바스 리갈은 그냥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잡종 위스키에 불과했다.
김재규는 박정희와 함께 군생활을 했던 군인 출신이지만 나름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혁명의 본질을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군사정권에 기반한 정치가 얼마나 비민주적이며 지저분하고 악랄한 지에 대해 간과했다. 그렇기에 10.26 사태를 일으키고도 결국 신군부세력에 먹히게 된 것이다. 부산과 마산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후폭풍도 예상했어야 했다. 적어도 정치의 본질을 깨닫고 군부 장악과 당시 신흥세력으로 올라오는 전두환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중앙정보부의 힘이 아직도 있었을 때 박정희는 힘의 일부를 군부인 보안사로 이동시켰다. 그 변화를 캐치하지 못하고 그는 안일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잠시 통제되었지만 그 불씨는 살아 있었다. 차지철의 제안과 박정희의 결단과 합쳐지면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이끌고 언제든지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다면 광주가 아니라 부산과 마산에 유혈사태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김재규의 행동으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었다. 부산과 마산의 희생 대신에 광주의 희생이 정권을 창출해주었다.
김재규는 계획적이지 못했고 민주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시 상황에서 최고 권력을 제거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안위와 차기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몰랐다. 대신 그는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의 명분을 주었다. 10·26 사태는 유신체제를 무너트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鄭昇和)와 사전 모의는 하지 않았던 것과 신군부세력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하고 행동한 것은 누군가에게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게 해주는 결과만 낳았다. 그 이후로 들어선 신군부세력의 일원들은 대한민국의 요직과 공사 사장과 온갖 특혜를 누리며 막대한 재산을 착복하는 행운(?)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