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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9. 2020

풍경을 달았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삶 (교동저수지)

삶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살아가는 그 사이의 어느 지점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일은 냉정해야 하고 어떤 일은 열정적으로 접근해야 될 때가 있다. 항상 열정적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쉼표를 만들어가면서 냉정과 열정사이의 균형점을 맞추는 곳이다. 지역마다 자리한 저수지의 주변의 데크길을 걷다 보면 햇빛이 수면에 부딪쳐 되돌아온 파동/입자가 공기를 통과할 때 물이 화학적 과정이 진행되고 그 결과 사람의 뇌에서 몇 가지 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교동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와 다르게 정지용의 시가 있고 시에 걸맞은 조형물이 저수지 위에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섬세하면서도 정감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탁월한 문인으로 알려진 정지용은 감성과 철학이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저것이 무엇일까. 새롭게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되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정지용의 향수와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는 장르도 다르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정지용의 향수가 감성과 철학을 써 내려간 시라면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는 너무나 냉정했기에 열정을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타 버린 그루누이의 삶이 있다. 

교동저수지의 데크길은 시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외롭지 않은 산책길을 만들어준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나 1,700년대에 파리의 악취가 너무 심해서 발달한 향수 문화는 다르지만 향을 잘 맡을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재능이기도 하다. 

교동 생태습지에 있는 시는 향수와  호수, 홍시다. 얼굴 하나 손바닥으로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에 눈 감는 호수의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임의의 점에서 임의의 점으로 직선을 그을 수 있다." 유클리드


필자는 주로 저수지에 만들어져 있는 데크길을 걷는 것을 자주 하고 있다. 쭉 뻗은 직선의 길보다 휘어지고 구불구불 만들어졌으면 경사면을 따라 때론 예측 불가능한 곡선의 길이 좋다.  

때론 선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인생에 굴곡 없이 살고 싶어 하지 하지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직선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까.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게 쭉 뻗은 직선의 삶처럼 거침없이 살 수 있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입춘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옥천 교동저수지는 정지용의 시 때문인지 모르지만 벌서 봄이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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