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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17. 2020

성씨 (姓氏)

대청호에 자리한 여흥민씨

후손을 만드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성씨가 있다.  성씨에서 성(姓) 은 아버지의 출신을 의미하며 부계 혈통과 씨(氏)는 어머니의 출신으로 모계 혈통이 합쳐진 것이다.  지금은 철저하게 그 특징을 따르지는 않지만 보통은 성과 본관은 가문을,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行列)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字)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 구별은 물론 가문의 세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형배를 보며 최익현이 촌수를 계산할 때도 거론된 바 있다. 

대청호의 주변길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여러 성씨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수몰되면서 그 흔적까지 없어져서 도로 주변으로 옛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대청호의 마을에는 여흥민씨도 적지 않게 모여 살았다고 한다. 여흥민씨운촌공묘역도 있으며 종갓집도 만나볼 수 있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이 등장한 성씨 중에 여흥 민 씨가 있었다. 여흥민씨(驪興閔氏)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는데 가문의 위세를 떨칠 때 조선왕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 곳에 세워져 있는 비는 조선 인조 때 울산부사를 지내고 예조판서로 증직 했던 여흥민씨 운촌공의 비라고 한다. 여흥민씨는 조선역사에서 적지 않은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흥민씨중 인현왕후의 동생인 민진원(閔鎭遠)은 1691년(숙종 17) 문과에 급제한 뒤 영조 대까지 병조정랑·사복 시정(司僕寺正)·전라관찰사·우의정·좌의정·판중추부사를 지내기도 했다.   

역사속에서 민치록(閔致祿)은 딸이 고종의 비가 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민치록의 딸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과 대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청호 생태습지를 가로지르는 데크길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여흥민씨의 묘역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삼정마을이 나온다. 대청호 로하스길의 도로변에는 여흥민씨 집의공파 종갓집이 있다. 경기도 여주에서 살았던 민후식이 여주에서 이주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다가 이곳에 다시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이 되었다.  

종갓집은 가운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 구조로 전면은 ㅡ형 행랑채, 후면은 ㄱ형 안채로 되어 있다. 여흥민씨 집의공파는 앞서 말한 인현왕후와 명성왕후를 비롯하여 순명효황후등 잘 알려진 여흥민씨의 흔적을 남겼다. 

성은 혈족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그것이 언제부터 발생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미 인류사회가 시작되는 원시시대부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성의 분화와 같이 본관도 후대에 내려올수록 분관·분 적이 늘어 시조의 발상지 외에 봉군지(封君地)·사관지(賜貫地) 또는 그 후손의 일파가 이주한 곳이 새 본관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성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 때 보통 집성촌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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