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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0. 2020

파동의 에너지

김제의 풍경이 있는 망해사

무언가 알고 싶어 하는 힘, 누군가를 알고 싶은 것,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볼 수 있어하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이 될까. 사람에게 원래 그런 에너지가 있다. 그렇지만 빨리 그 소중하면서 바꿀 수 있는 가치를 버려버리고 세상에 물들다 보면 그 에너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잊고 산다. 그 에너지의 근원에는 순수함이 자리하고 있다. 순수함은 진정성이다. 사람들은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혼동하는데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순수하면서 순진한 성향을 가질 수 있지만 순진한 것이 순수한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쉽게 이야기하면 순진한 것은 백색의 천에 무언가를 부어서 쉽게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순수한 것은 다른 색깔처럼 보여도 씻으면 원래의 색깔로 돌아갈 수 있다. 

김제의 대사찰이라는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망해사는 조용하지만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곳이다. 754년(경덕왕 13) 법사 통장(通藏)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642년(의자왕 2) 거사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패망한 백제에 더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필자로선 뒤의 창건설이 조금 더 애착이 간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칠성각, 요사채로 사용되는 청조헌(聽潮軒)·낙서전(樂西殿) 뿐이 없지만 중창을 한 진묵은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이적을 남겼는데 그 일화들이 오늘날까지 널리 전승되고 있어서 남다른 느낌이 있다. 

사람들은 돈이 중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하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순수함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력을 잃어버린 사람은 물질이나 돈에 물들어 자신의 색깔을 완전하게 잃어버린다. 그럼 가치의 잣대는 단순화되고 측정되기 쉽게 되어버리지만 만족이라는 것은 없어져 버린다. 가져도 가져도 잠시의 만족감 뒤에 부족함을 느끼고 갈증은 없어지지 않는다. 

심어져 있는 나무 한그루,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서해의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승지이므로 망해사라 하였다고 하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영취산에 있는 사찰도 망해사이지만 그곳과는 다른 곳이다. 

망해사가 서해를 품었듯이 사람을 품는 마음, 이해하는 것, 함께하는 것은 다름 속에 인정하려는 용기에 있다. 소중한 누군가가 지금까지 알던 엄마나 누나가 될 수 없고 아빠나 언니가 될 수 없다. 정신적으로 특정한 나이에서 정체가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아가려면 용기뿐이 없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걸어갈 용기의 에너지는 오직 순수함에서 나온다. 순수함에 기반하지 않은 물질적인 것은 자신을 흔들어 버린다. 

진묵대사가 지은 낙서전(樂西殿), 대사가 심은 팽나무가 여전히 푸르고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이다.  진묵대사의 이름은 일옥(一玉)이며 진묵은 그의 호이다. 그는 불경뿐만 아니라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내전을 읽었는데 조금도 막힘없이 줄줄 해석하였으며 한번 눈에 스치면 외우곤 하여 아무도 스승이 되어 가르칠 수 없었다고 한다.

불교의 교리와 상관없이 사람을 살리는데 행보를 하였던 진묵 스님은 순수함이라는 에너지를 가졌던 사람이 아닐까. 순수한 사람은 무기력하지도 않고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으며 사람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물정을 모른 채 사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고갈되거나 너무 일찍 그 가치를 모르고 떠나가버린 순수함에서는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순진한 파동의 에너지에서 비롯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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