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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25. 2020

백련 (白蓮)

음성 감곡의 신후재

조선시대 고향이라는 곳으로 낙향한다는 것은 중앙 정계로 진출을 마음속으로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정치를 한다는 것은 항상 공격과 방어에 유능해야 버틸 수 있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특권과 자신이 무언가를 바꾸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는 나름의 소신이 정치의 중력이 이끌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된다. 그걸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복숭아로 유명한 음성 감곡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분들에게만 알려진 백련 공원이 있다. 공원 이름에 사용된 백련은 신후재라는 문신이 지은 백련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인 신후재는 사은겸진주주청부사(謝恩兼陳奏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강화부유수·개성부유수·한성부판윤을 지냈는데 이때 신후재초상을 가지고 온다. 그 신후재 초상이 이곳에 보관이 되어 있다.  신후재로 인해 평산신씨 장령공파종중으로 사용되는 건물이 이곳에 있다. 

작은 공원이지만 백련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여름에 소박하면서도 하얀색의 백련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西人)에 의해 여주(驪州)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 석방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은거하며 백련재(白蓮齋)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곳이 백련이 피는 연못이다. 가운데 동산처럼 섬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백련재의 중심 정원이다.  

 1679년(숙종 5)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던 신후재 초상 포쇄 행사가 진행이 된다. 매년 음력 11월 2일, 신후재 공 탄생일을 맞아 평산 신씨 후손들은 1년에 한 번, 충북 유형문화재인 신후재 초상 포쇄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신후재 초상은 조선 숙종 시대 재식을 반영한 초상화로서, 정장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 전신초상화이다. 

깨달은 이는 한 가지로 꿰뚫고 거기서부터 각각 상황에 맞춰 말한다고 한다. 한 가지를 꿰뚫기가 쉽지 않기에 사람들은 계속 방향을 틀다 보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진흙탕에 더럽히지 않은 정결한 꽃이니, 멀리 떠나는 애인에게 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연꽃이 언제쯤 필까.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주시니

처음엔 불타는 듯 붉었더이다.

가지를 더난 지 며칠 못 되어

초췌함이 사람과 다름없더이다. 


연꽃의 원산지는 인도로 추정하나 이집트라는 의견도 있는데 뿌리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지름 15~20cm의 연한 홍색 또는 백색의 큰 꽃이 한 송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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