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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8. 2020

출신성분

위기가 기회를 만든다. 

현재에도 사람이 태어나는 것에는 차별이 없지만 출신에는 차별을 만든다. 모든 직업군과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는 장벽은 존재한다.  조부모,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적인 수준, 지위는 자식의 앞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대대로 물려받았던 생각의 벽이 고착화되어 있다면 인생길의 폭도 좁아지고 갈 수 있는 갈래길의 수도 적다.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 때 어렵게 만들어진다. 

화랑무예태권도성지로 알려진 곳이면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김유신의 탄생지가 있는 곳은 진천이다. 김유신은 김해의 김수로왕이 세상을 열고 이어진 금관가야의 12대손이다. 금관가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금관가야의 왕족이었기에 김유신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김유신의 할아버지는 신주도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을 지낸 가야의 명장 김무력(金武力)이고 아버지는 김서현(舒玄)이다. 김서현은 바로 이 진천에 와서 자신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금관가야의 왕족이었지만 김유신의 집안은 신라의 귀족들 가운데에서도 권력의 정점에서 멀어진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했다. 어린 김유신이 택한 길은 스스로 화랑이 되어 무예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었다. 

김유신에게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흔들리는 불안정한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였다. 화랑은 향후 신라군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화랑이 된 김유신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된 것은 여동생 문희를 왕실의 일원인 김춘추와 결혼시켜 정계 한복판으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터만 남아 있어서 당시 마을이 있었을 이곳 주변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기는 힘들다.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에 있었던 진천군은 크고 작은 분쟁이 끝없이 있었던 곳이다.  김서현은 이곳에서 신라의 경계를 지키던 무장이었고 김유신은  642년 압량주(押梁州,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의 군주가 되었고 이때부터 중요한 직책을 거쳐 나가게 된다. 

김유신의 탄생지에는 한옥으로 만들어진 고택이 한채 자리하고 있다. 열려 있는 공간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고택은 그 존재를 조용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전장을 누비면서 살았던 김유신은 왕족 출신으로 증조부, 조부, 부모가 한 발 한 발 신라에 틀을 잡아놓은 덕에  삼국 통일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 단계 더 높은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기도 했다. 김유신은 훗날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었는데 그의 삶을 보면서 홀로 우뚝 서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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