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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7. 2020

조화 (調和)

천주교 성지와 김홍도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가진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서로를 보완하면서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좋은 조화라고 한다. 국악과 팝의 만남이라던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한국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과의 조화도 가능하다.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가능성에 대한 열린 마인드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괴산 연풍에는 연풍성지가 있는데 연풍에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김홍도가 걸어간 길이라고 하여 김홍도의 그림과 함께 그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해두었다. 연풍성지는 코로나 19로 인해 공간 내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외곽에서 적벽돌로 만들어진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홍도는 1745년(영조 21년)에 태어나 조선시대의 화가로 활동하면서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분야에 능하였는데 꼭 서양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가 이곳에 흔적을 남긴 것은 초상을 그리던 화가가 정조 1791년에 연풍현감으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3년 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다양한 그림을 남겼는데 괴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금강을 비롯하여 괴산에는 빼어난 절경을 보여주는 곳이 적지가 않다. 괴산과 멀지 않은 곳에 단양도 동양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최근의 사례로 보듯이 서양인들은 훨씬 더 세상이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인들은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스스로를 환경에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연풍성지와 단원 김홍도의 이야기가 있는 이곳에서는 세밀하게 보면 동양과 서양의 관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림과 건물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연풍성지의 건물에서는 사물을 주변 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느낌이 들게 만든다면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물들 사이에 관계성을 파악하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재화가로 잘 알려졌던 단원 김홍도가 연풍현감이라는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로 일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림을 그리는 사또의 모습에서 백성들은 조금 독특함을 엿보지 않았을까. 

이곳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연풍 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純祖)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곳이다. 본격적으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해에 많은 희생이 있었던 곳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연풍 향청인데 성지에 있는 연풍 향청은 향청 이후 헌병주재소, 경찰지서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으나 천주교회에서 구입하여 연풍 공소의 예배소로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지금은 들어가 볼 수가 없다. 향청을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것도 독특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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