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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1. 2020

행정구역

채만식이 태어난 임피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서도 중요한 것은 행정구역이지만 예전에도 행정구역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였다. 행정구역에 따라 지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대도시는 오래전에 중심도시였던 곳이 아닌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행정구역 중심은 목관할 아래의 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었다. 예를 들면 충주, 청주, 공주, 홍주, 나주 등을 생각하면 된다. 부, 목, 대도호부, 도호부, 군, 현으로 구성된 행정구역의 등급체계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기존의 8도가 23부제로 바뀌면서 모두 일괄적으로 군(郡)으로 바뀌어 사라지게 된다. 

채만식의 탁류라는 소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태어났다는 임피면은 처음 와본다. 직접 가서 보니 마을의 색깔이 확실한 곳으로 연고지가 있다면 자주 오고 싶은 곳이었다. 채만식이 태어났지만 그의 생가터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군산 임피에서 태어나 활동하던 작가이자 소설가로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에 합격해 다니다가 퇴학되기도 했었다. 

행정구역으로 임피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진 것은 신라가 통일하면서 붙인 것이다. 백제의 시산군(屎山郡)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군으로 만들었으며 고려에 와서 낮추어서 현으로 만들었다. 임피향교도 있고 오래된 건물도 있지만 이날은 채만식의 이야기로만 채워본다. 마을의 중심에는 팔성정이 자리하고 있는 연지쉼터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현이었기에 이곳을 다스리는 관리는 현령으로 그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앞에 심어져 있는 왕버들나무들은 250년~500여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행정구역상 임피면이 군산시가 된 것은 1995년이다. 1995년 1월 1일 군산시와 옥구군의 통합에 따라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이 되었다.

채만식이 태어난 곳이니만큼 임피 채만식 도서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채만식의 대표적인 작품은 탁류라는 소설로 군산을 관통해 흐르는 탁한 물과 당시 혼탁한 사회 현실을 적당하게 엮어서 식민지 자본주의 타락상을 그려낸 작가다. 탁류라는 작품을 보면 혼란한 시대에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한 여성이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면서 남자의 능력에 따라 탁한 물에 휩쓸려가는 아픈 인생을 엿보게 된다. 여자는 뒤옹박 팔자라는 말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뒤옹박은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만 도려내여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하는데 부잣집 같은 경우 그곳에 쌀을 담아두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아둔다.

채만식 도서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 마을 입구 쪽에 오면 채만식 선생 생가터가 나온다.  채만식의 개인적인 삶을 보면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6남 3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일본에까지 유학을 갔지만 그 뒤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기자로 전전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 있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 

작가만의 삶을 걷기 위해 1936년부터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업 예술가의 길은 어렵고 험난하다. 약 10여 년간 창작활동을 하던 그는 지병을 얻어서 광복이 되던 1945년 이곳 임피로 낙향하였다가 지병으로 1950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썼던 소설 탁류는 바로 군산을 가로질러 흐르는 탁한 금강을 의미한다. 살아생전에 채만식의 탁류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군산시내에 가면 어디서든 간에 채만식의 탁류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다. 

채만식의 흔적을 찾아본 다음에 군산에서 유명하다는 고추짜장밥을 먹기 위해 한 음식점을 찾았다. 고추를 최대한 빼고 넣어 비벼먹었는데도 땀이 물흐르듯이 흐른다. 다음에 다시온다면 그냥 짜장밥을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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