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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1. 2020

서시를 읽다.

봄이 오는 김제의 수원 저수지

학교를 다닐 때 억지로 외우다시피 한 시를 제외하고 아! 이 시는 품고 싶다고 생각한 첫 번째 시는 바로 윤동주의 서시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과정인지 알기 때문에 시를 통해서라도 안식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시를 읽어보면 그가 많은 분야의 책을 접했음을 알 수 있다. 잎새에 있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것은 혼자 있어도 자신을 챙기는 것은 논어에서도 나온 내용과 맥락이 유사하다. 

봄이 되면 녹색의 봄을 만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김제의 수원 저수지는 저수지 주변의 둘레길로 걸어도 좋지만 중간중간에 있는 시비를 보는 재미도 있다. 전에 왔을 때는 윤동주의 서시를 보지 못했는데 오래간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윤동주를 만날 수 있었다.  

봄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수원 저수지에는 녹색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잘 살펴보면 꽃이 피기 전에 봉우리가 진 것을 볼 수 있다. 목화꽃이 만개해야 하지만 날이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만개한 목화꽃은 남해지방에서만 볼 수 있었다. 

김제 수원 저수지에는 서비가 세워져 있다. 김제는 예술을 사랑하는 예항의 고장으로 서예가 유명한데 그래서 강암 송성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송재 송일중, 석정 이정직, 유재 송기면으로부터 강암 송성용에게 이어졌으며 강암 선생 탄생 90주기를 맞아 시민의 뜻을 모아 이곳에 서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람과 맞닿트릴 것 같은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조금 공활한 공간에 오면 마스크를 벗고 걸었다. 역시 봄 향기는 마스크를 통해서 맡는 것보다 마스크를 벗고 맡는 것이 제격이다. 봄 향기 물씬 풍겨 나는 수원 저수지를 한적하게 걸어본다.  

노을을 바라보며


곱게 물든 노을 하늘의 반을 물들이고

개인 하늘 물 위에선 엷은 물안개 피어오르네.


산자락에 걸친 노을 위로 한 마리의 새가 나는구나.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묻혀 사네

- 유재 송기면

걷다가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윤동주의 서시라는 작품이다.  영감이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이나 기회를 엿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은 오랜 경험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공주의 나태주 시인이 발표한 풀꽃의 두 번째 시가 생각난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색깔과 모양까지 알고서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노력을 하면 상대방의 색깔을 알 수는 있겠지만 모양까지 아는 것은 상대방을 마음속에 담을 줄 알아야 가능해진다. 풀꽃 2에서는 연인이 되는 과정이 비밀이라고 했지만 김제의 수원 저수지의 봄을 만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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