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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6. 2020

민심 (民心)

현명하고 위대했던 선택

총선이 마무리가 되었고 그 결과가 수치로 드러났다. 시끌시끌하게 서울의 광화문을 채우며 민심이라고 외치던 헛된 구호를 확실하게 씻어버린 선택이었다. 자신의 이해득실이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는데 그것을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읽는 정치인들과 검언유착을 못 본 채 넘어가는 사람들, 온갖 거짓 정보를 통해 국민들의 머리를 혼탁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혼란과 코로나 19발 힘든 살림 속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참아낸 국민들의 승리이기도 했다. 


국회의원 한 명에게 들어가는 세금은 전 세계 어느 정치비용과 비교해봐도 우월할 만큼 상당하다. 한 명이 한 달에 쓰는 돈은 일반 직장인들이 1년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을 훌쩍 넘을 정도다. 그들이 잘나서나 그만한 자격이 되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아가야 갈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의 세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기에 주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잘해라라는 의미지 이해득실과 특권을 위해 버티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라면 일을 안 하는데 돈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국민들도 공감하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깨어있고 현명한지를 보았다. 지금의 정부가 하는 방향이 맞다면 따라주고 그들의 투명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마치 코로나 19가 지금의 야당에게 불리하고 여당에게 유리한 것처럼 생각하면 오판이다. 국민이 모인 거대한 눈이 명확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갈길은 멀다. 부동산의 문제는 명확하다. 한 마지기의 땅을 가진 사람에게 한 섬의 세금을 걷는 것이다. 열 마지기 땅을 가진 사람에게 한 섬의 세금을 받았기에 지금까지의 부동산 불씨가 안 꺼진 것이다. 


야당이 끊임없이 문제로 거론한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을 때린 것을 어떤 국민이 공감하겠는가. 약자와 약자를 싸움 붙이는 행위와 그걸 포장해주는 언론의 행태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사람처럼 살기 위해 기본적인 소득을 확보하는 것은 더 빨리했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수준은 깨어서 저 앞에 가있으며 그들이 준 권력을 스스로를 보호하고 심지어 범죄도 무마하는 검찰의 행태를 이미 잘 알고 있으며 특정 언론이 어떤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려는지 알고 있다. 더 이상 자극적인 범죄와 연예인들의 이야기로 뒤덮여 정치를 보지 못하는 국민들이 아니다. n번방 문제를 검찰이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터트려야 할 시기만을 엿보고 있었지만 생각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용서하지 못할 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때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사회적 약자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피해자를 잔인하게 대했던 가해자 역시 사회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잔인함을 가진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가해자가 사회지도층이나 검찰 혹은 언론일 경우 밝혀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밝혀질 때 보면 한 사람이나 몇 사람 정도에 불과했으며 어떤 것으로도 덮일 수 없을 상태에서 드러난다. 드러났는데도 그냥 묻히기도 한다. 


자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김성준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언론과 n번방의 조주빈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언론의 태도를 펼쳐놓고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조금 더 가벼운 범죄행위 때문일까. 김성준의 여죄는 더 이상 밝혀진 것은 없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하는 일을 통해 그들을 평가하고 싶어 한다. 각종 언론에서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기 위해 막말을 하고 인신공격과 던지듯이 허위사실을 말하는 것을 위해 그 많은 세금과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을 많이 세웠으며 항상 위험한 곳에 먼저 투입되어 사망자가 상당했던 101 공수사단의 군인들에게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느냐 물었을 때 그들은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함께했던 전우가 너무나 대단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19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용기를 가지고 참아내며 버틴 것이다. 스스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웃들이 함께 해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국민들은 또 한 번 도약했으며 현명한 선택을 했다. 정치를 보는 눈이 과거와 달리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그들의 말하는 거짓을 걸러내었다. 국민의 수준을 다시금 돌아보지 않는다면 다음번에도 역시 걸러질 사람은 걸러지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의 출신이나 배경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며 언론이 몰아가는 대로 가지 않는 국민들의 선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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