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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4. 2020

글의 시작

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금은 글이라는 것을 쓰면서 먹고살고 있다. 직장생활도 적지 않은 시간 해보았지만 직장은 미래를 담보해주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능력을 키워도 한국사회는 그렇게 능력이 많은 직장인을 요구하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런 직장은 특수한 전문직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이미 어릴 때부터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부모 덕분에 첫발부터가 잘못되었기에 그 길로 가는 길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심지어 자식의 성향과 상관없이 학교의 선택을 결정지어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커서 생각해보면 자식의 기준에서 보면 폭력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집에 책이 거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책과 가깝기는 힘든 가정환경이었다. 그렇지만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글쓰기로 상을 받기 시작했다. 책을 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지 않은 도서관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책을  보는 관점은 쓸모없는 투자이며 돈쓰기의 대상이었다. 책을 사는데 그렇게 인색했으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책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도 책을 사는 것에 대해 많은 잔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지금의 길은 10대 때부터 어렴풋하게 보았던 것 같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자본이 가진 문제를 보았다.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직장을 얻어서는 시간의 자유라던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20대까지는 할 수 있는  모든 공부를 시도해보고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핵심을 찾으며 실용적인 뇌의 정리 능력을 가지려는 목표를 세웠다. 스스로에게 내건 조건이 있었다. 어떤 자격증이던 분야던간에  학원이나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었다. 


취업하려는 분야와 상관없이 20대에 충분히 많은 자격증을 따고 공부도 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볼 때 핵심에 누구보다 빨리 접근했다. 물론 책 역시 분야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읽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책은 독서가 아닌 기능을 숙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풍부해질 수는 없었다.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부터는 10년 후를 생각하며 지속적으로 글에 대한 능력을 키워나갔다. 


통계를 보면 알겠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수입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어릴 때의 빈곤함을 반복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큰 비중을 두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읽고 싶지 않은 난해하기만 한 글이 아니라 읽고 싶은 글을 쓰면서 경제적으로 산다는 것은 글쓰기 노동의 효율성을 높여야 했다.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계가 있다. 그 대안으로 사람들은 자본을 만들어서 수익을 만들기를 원하는 방법만 생각한다. 아파트라던가 건물 등을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방향으로 뛰어서는 결국 일부 사람들만 승자가 되는 길이다. 필자에게 있는 유일하면서 가장 큰 자산은 시간이었다. 시간과 지식과 능력을 바꾸면서 조금씩 쌓아갔다. 시간을 사용하지만 남들보다 단축할 수 있는 그 길을 발견하는 것의 한계치로 달려가면서 나머지 시간을 나에게나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직 미완이지만 10대, 20대, 30대에 생각했던 그 길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별한 가정환경 속에서 다른 힘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글의 힘은 가지게 되었다. 가족 중 누구도 글을 쓰는데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지만 오로지 나만이 내편이 되어주며 걸어왔기에 글을 사랑한다. 글은 정상이 보이지 않는 분야여서 좋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보고 느끼지 않으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좋아질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글이 있다. 그리고 그 책을  끝낼 수  없을 거라는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글쓰기란 그런 것 같다. 끔찍한 감옥이 있는데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안 들어갈 수 없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지독 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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