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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8. 2020

실학 (實學)

김제 이석정 생가

기득권이라는 것은 오래전에 배운 것이나 자리를 통해 권리를 유지하려는 세력을 의미한다. 기득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통과의례 같은 것을 거쳐야 한다. 보통은 학벌이나 시험 혹은 강력한 단체 등이다. 통과의례는 돈이나 인맥, 실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는데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장벽 안의 무풍지대에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바람이 불지 않는 그런 세상은 없는데 부자연스러운 그 환경에 익숙해지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굳이 바람이 불지 않은데 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과 괴리가 생기고 사람이 넘어오기 위한 장벽을 더 높이 만든다. 

조선시대의 실학자들은 민족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전통적 화이관(華夷観)의 극복을 시도하였던 사람들이다. 실학이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학문이다. 정통적인 가치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실학은 지금까지 유지하던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변화에 맞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김제에 자리한 이성적 선생 생가는 초가지붕의 안채는 조촐하게 지어진 평범한 농가의 모습으로 석정은 여기에서 주로 기거하며 손님을 맞거나 후학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였던 석정 이정직은 실학을 추구하였던 사람이었다. 

초가지붕으로 만들어져 있는 이 집은 그의 생가로 140여 년 전에 건립되었으며 안채와 헛간채 2채만이 남아 있다. 안채 서쪽에 있는 담장과 이어진 헛간채는 근래에 지어졌는데  주위에는 토담이 둘러쳐 있어 초가와 시골에 맞는 조화를 이룬다.

조선 지식의 근간을 이루던 성리학과 실학의 심성론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상당히 큰 것이었다. 실학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민족의 역사적 전통에 대해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역사 지리와 인문지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비롯한 민속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것은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한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천문, 지리, 의학, 수학, 서화 등 두루두루 통달한 유학자인 통유(通儒) 9살에 통감通鑑을 모두 읽었으며,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남다른 성품까지 겸비하였다는 이정직의 생가다. 

실학사상을 낳게 한 것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실학자들은 농촌의 피폐상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이기도 했다. 석정 이정직은 1880년(고종 17) 한 권(翰圈)에 들었으며, 1882년에는 한림소시(翰林召試)에 합격하였고, 정언을 지냈으며 1884년에는 관록(館錄)과 도당록(都堂錄)에 들었다. 이정직이 호남 서단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이정직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은 김제로 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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