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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9. 2020

개과천선 (改過遷善)

흥복(興福)이 죗값으로 지은 사찰 

사람이 개과천선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죽음과 맞먹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그 본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아니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폭력적이거나 예의 없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지도 않으며  바라보지도 않는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의 눈과 행동, 말을 보면 얼마 안 보아도 그 바닥을 알 수 있다. 사기를 치려는 사람의 눈은 그렇지 않은데 말과 행동은 너무나 친절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한다. 너무나 견딜 수 없는 이질감으로 속에서 울렁거림이 일어난다. 

백제 무왕의 아들로 백제의 부흥을 이어나가려던 의자왕은 적지 않은 사찰을 만들었다. 백제부흥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제의 흥사동에 가면 전라북도 김제시 승가산(僧伽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인 흥복사가 있다. 원래 650년(의자왕 10)고구려에서 온 보덕(普德)이 창건하여 승가사라 하였지만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흥북이라는 사람이 중건하면서 흥북사라고 불리고  있다. 

의자왕 때 창건하였던 흥북사에서는 많은 불교 고승이 배출되었다고 하니 사찰의 위상이 남달랐을 것이다. 추후 한 사람에 의해 지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소박한 느낌의 사찰이다.  천왕문에 자리한 사천왕도 어딘지 모르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은 1974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1976년 정면 4칸, 측면 2칸의 대웅전과 육각형의 건물인 미륵전, 삼성각(三聖閣), 사천왕문(四天王門), 요사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흥북이라는 사람은 김제 지역에 살던 관리였다고  한다. 욕심이 많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던 그는 흉년이 들었을 때조차 백성들을 구하지 않아서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백성의 고통을 보던 그의 아내는 직접 곳간을 연 후 곡식을 주어 백성들의 배고픔을 구휼하였다고 하다. 그리고 어느 날 꿈에서 구렁이가 흥복의 꿈에 나타나 네가 지은 업으로 인해 비로소 너와 몸을 바꾸어 사람으로  살 수 있었는데 너의 아내 때문에 원통하게 업을 벗지 못한다고 하며 울었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흥복은 아내의 뜻에 따라 개과천선하여 불도를 닦고 여기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불상이 서 있는 이곳 주변의 마을 이름은 흥복이다. 고려 말 우왕 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제 박선중이 말년을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불상의 모습이 어딘가 불균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마음이 편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장화리의 쌀뒤주에서는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것과 다른 사람을 살았던 흥복이 개과천선하였다는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든다. 

흥복사의 현존하는 당우 중 극락전과 정혜원(定慧院)은 1920년대에 건립된 건물이며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나 수령 600년가량의 신단수(神壇樹)와 설천(雪泉)이라는 우물이 있다. 고구려 승려인 보덕은  보장왕이 도교를 존중하고 불교를 숭상하지 않으니 국운이 위태롭게 될 것을 걱정하여 여러 차례 왕에게 간하였지만 듣지 않자 백제의 의자왕에게 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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