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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9. 2020

사색의 길

마음속 어린아이가 세상을 녹인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즉 사색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무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루쉰는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라는 말을 남겼다. 굳이 무언가 딱 맞춰 안 해도 된다는 의미다. 누가 가져갈 것도 아닌데 떨어진 꽃을 아침에  줍지 않고 저녁에 주어도 어떻겠는가. 

문득 명재고택과 노성향교가 있는 사색의 길을 몇 바퀴 돌아보고 싶어 졌다. 명재고택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걸어보는 것이다. 만보를 채울 요량으로 걸어보는 것도 좋고 그냥 봄꽃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걸어도 좋다. 앞에 연못이 있고 자연과 어울리는 고택의 선이 어울려 보인다. 

명재고택의 윤증 역시 세상에 떨어져서 살았던 사람이다. 세상에 뜻이 맞지 않아 숨어 사는 사람에도 세 부류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시은과 산은과 대은이 바로 그것이다. 시은은 무도한 시대를 만나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없기에 은거하며 신은은 애초 세상사에 뜻이 없어 은거하며 마지막으로 대은은 불의와 어지러움 속에서도 깨끗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계절이 변하면 새롭게 무언가 변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어야 할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명재고택과 노성향교와 가까운 곳의 언덕만 몇 바퀴 돌아봐도 금방 4km를 걸어볼 수  있다. 벚꽃이 지는 시간에 사색의 길을 걷는 기분도 괜찮다. 

명재 윤증을 보면 정확하게 올바른 식견이 존재하는 중간 지점을 정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이 든다. 중간 지점이란 결코 절대적이고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라는 이치는 현대의 정치인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명재고택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꽃은 그냥 꽃이어서 좋다. 사색의 길을 걷는 것도 왼발을 내딛으면 오른발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다시 왼발이 나간다. 운동이나 수련 역시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다시 왼쪽으로 몸을 기울어야 하고 몸이 왼쪽으로 기울면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게 해야 한다. 

노성향교, 노성산성, 명재고택을 이어주는 사색의 길은 산책의 힘이기도 하다. 명재고택 사색의 길은 총두 개의 코스가 있는데 1코스와 2코스로 각각 20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사색의 길이란 사색, 토론, 학문에 정진한 옛 선비들이 거닐던 옛길을 자연 친화적인 산책길로 새롭게 조성한 길이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사색의 향기가 봄꽃에 묻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색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오감을 다시 예민하게 만들어준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서 감정과 정서를 만들고 경험하게 된다. 실내나 사람들이 너무 모이는 곳보다는 자신을 느낄 수 있는 숲이나 이렇게 길을 걸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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