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한글의 과학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찍고 배우 전미선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안타까움이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한자나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해를 도와주는 데 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부여하는 데 있어서 영어를 사용한다. 굳이 업무와 상관이 없는 상당수의 분야에서 왜 토익점수를 내야 하는지 납득은 안되지만 이해는 된다. 줄 세우기가 편해서 그렇다.
점수는 되는데 왜? 영어회화가 안되는지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영어를 하면 영어가 늘겠는가. 한글을 깊게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어떤 언어를 배운다면 대화하는 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기능을 배우는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잘 늘지 않는다. 학원과 토익, 토플 등을 주관하는 회사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에 휩싸인 것은 한글 창제에 신미라는 스님을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신미라는 스님은 산스크리트어와 인도어, 티베트어에 정통해 여러 승려의 법어를 번역·해석하여 유통했기 때문에 한글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는 있다. 1461년 훈민정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간경도감을 설치할 당시 이를 주관했는데 이는 한글 보급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글이라는 탁월한 우리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며 어떤 외국어보다 위에 두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문화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외면받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19로 예전처럼 한국영화의 관객수가 나오지 않지만 인구 대비 1,000만 관객이 드는 영화가 적지 않게 나오는 한국은 유럽이나 북유럽의 독서인구에 비해 턱없이 낮다. 독서는 한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나랏말싸미로 만들어낸 한글의 과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어도 퍼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희석된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창제보다 배포에 많은 비중을 들이고 있다. 기득권들은 백성들이 똑똑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조금은 평평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가 꿈꾸었던 세상은 윤리를 알고 백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났지만 윤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식을 학대하고 약자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이해득실에 의해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사가 활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