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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2. 2020

착취 (搾取)

아리랑의 배경지 하시모토 농장을 찾다. 

최근 성과 관련된 이슈가 부각되면서 성착취라는 말이 뉴스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성착취 범죄 대해 무척 강하게 대응한다. 자신의 형량을 모두 채웠어도 사회로 나가지 못한다. 매년 석방되는 인원은 한 명 정도밖에 없으며 미국의 악질 성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워싱턴주 맥닐 섬에 있는 특별구금센터다. 성범죄자들의 알카트로즈라고도 불린다. 

보통 착취란 의미는 임금이나 재산 혹은 노동 착취에 많이 사용한다. 재산을 강탈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농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을 착취한 것이 일제강점기에서도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에 그들이 살던 공간이나 시설물은 적들의 재산이었기에 적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보통은 집들에 붙여지는데 적산가옥이라고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조정래 아리랑의 배경지는 여러 곳이지만 그중에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도 있다. 김제에 자리한 적산가옥으로 예전에 왔을 때는 오픈되어 있지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방문해 보니 공간이 열려 있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반도로 건너와서 거주했다. 각종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일본 본토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착취를 일삼으며 재산을 형성해나갔다. 보통은 노동력 착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제나 군산 같은 곳에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옆에도 가옥이 하나 있는데 일본식 가옥으로 보이는데 조금은 독특해 보인다. 일본 와카야마 현[和歌山縣] 북동부 기노 강[紀ノ川] 유역에 있는 도시이기도 한 하시모토(橋本)는 일본인들의 이름에서 많이 사용이 된다. 얼마 전 한국, 대만, 필리핀 등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보상금과 사과편지를 전달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 총리에서도 볼 수 있다. 

보통 일본인들은 다다미를 깔아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한국식 가옥의 마루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로 들어가 본다. 하시모토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1906년이다. 죽산으로 거주지를 이전하여 1916년 5월부터 농장을 경영하였다. 1931년 김제군 죽산면 죽산리 농장을 변경하여 법인 주식회사를 세웠는데 바로 하시모토 즉 교본(橋本)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가 소유한 땅은 죽산면의 방대한 농토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토지수탈의 역사가 이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을 한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빼앗고 1920년대에는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을 빼앗은 후 1930년대에는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조선인과 일본인의 농업수입 격차가 1941년에는 96배에 이르렀다고 하니 지금의 소득격차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착취의 공간이며 일본인들의 빛나는 36년의 배부른 시간을 보여주는 곳이다. 역사 속에서 적산가옥이나 오래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은 보존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의 발생 원인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지만 지금도 법적·제도적으로 상위계급의 착취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운 시장 경제에서도 착취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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