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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6. 2020

사라진 전설

보령 맥섬의 최치원

시조라서 그런지 최치원의 이야기만 들으면 무언가 가슴에서 뛰는 것이 남다르다. 얼마나 DNA를 공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치원은 마치 가까운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사라지기를 택했으며 그의 죽음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최치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수많은 글과 흔적을 남겼다. 

고운 최치원이기에 최고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보령에 남겨놓은 흔적은 성주사지와 바로 이곳 맥섬이다. 보령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맥섬은 썰물 때만 들어가 볼 수 있는 섬이었다. 지금이야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당나라에서 17년 동안 머물던 그가 신라에 귀국한 것이 885년, 28세였다. 그렇지만 신라의 현실은 암울 그 자체였다. 이미 신라는 국운을 다하고 기울고 있었으며 견훤이나 궁예가 이미 자신만의 국가를 세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인생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옛 선비들의 특권 아닌 특권이었다. 기득권이 자신의 힘에 취해 있을 때는 이미 되돌릴 길이 없다. 골품제의 틀에 꽉 잡혀 있었던 신라라는 나라에서 6두품이 제시하는 개혁 정책은 의미가 없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좋은 말을 들어본 기억이 하나도 없다. 대신 최치원에게서 많은 글과 생각을 접하게 된다. 어차피 핏줄의 시작이니 얼마나 먼 조상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친가나 외가분은 남긴 글 같은 것이 없으니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경북에 가면 고운사가 있다. 681년에 건립된 고운사의 '고운(孤雲)'은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인데, '외로운 구름-고운'은 최치원의 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호가 지역명을 결정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해운'도 그의 '자'이다. 해운, 해운이라.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바로 그 유명한 부산의 해수욕장이기도 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해운대해수욕장도 방역이 필수지만 어쨌든 간에 그의 호가 명소가 되었다. 

맥섬 중앙에 낮은 산 같은 곳을 걸어서 다시 올라가 본다.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과연 신선이 되었을지는 모른다. 그의 길 위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최치원은 오늘도 맥섬의 너럭바위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진 풍광에 하염없는 눈길을 두었을 것이다. 

최치원은 학문이 패도의 수단이 되지 않을 날을 기다리며, 권력에 빌붙어 아부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이 시대에 그 누구가 최치원처럼 살 수 있었을까. 사라졌지만 마치 옆에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때론 가르침을 주는 최치원의 행보를 보면서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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