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주사지

신체도 정신도 일상의 고통이 있다.

나이가 들다 보면 몸이 마음대로 안될 때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것을 편하게 먹고 몸이 피곤하지 않으며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여기에 코로나 19와 같은 변수가 등장하고 사회에서 공정하지 않는 일들이 계속 생겨나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는 육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음의 안식을 가지며 고뇌보다는 일상의 삶이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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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는 성주(聖住)라는 이름이 붙은 사찰들이 여러 곳이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의 성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을 비롯하여 충청북도 음성읍에 있었으며 고려시대에 지은 사찰도 성주사다. 창원의 성주사는 웅신사라고도 불렸던 사찰이며 보령의 성주사는 오합사라고 불리기도 했던 사찰이다. 충주에도 성주사가 있지만 한자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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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는 초심이 많이 흐려져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살면서 그동안의 경험, 배웠던 것들, 어디서 들은 것으로 추측하면서 첫 마음을 믿지 못하고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다. 그동안의 상식과 경험이 더 현명하게 잘 보이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흐리게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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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작년에 어렵게 새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던 과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만약 그 과정을 기억한다면 허망할 것이다. 결국 잎사귀를 떨어트리고 내년에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니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과거를 끌어와 현재와 비교하고 미래의 것을 가져다 지금의 것에서 희망이 많지 않음을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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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는 참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다. 성주사지의 백월화상 탑비는 890년(진성여왕 4)에 세워진 신라 최대의 것으로 최치원(崔致遠)이 글을 짓고 최인연(崔仁渷)이 썼다.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성주산파(聖住山派)의 중심사찰이었으며 성주산파의 총본산으로 크게 발전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중건되지 못하여 현재 폐사 터만이 사적 제307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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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쉬는 법은 누구나 잘 안다. 몸은 잠들면 쉴 수가 있지만 마음은 쉴 줄 모른다. 초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도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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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성주사가 전소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2020년은 참 시끄럽고 변수도 많고 유동성이 많은 한 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 바라보아야 하며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지만 결국 초심은 똑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제대로 본 첫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사람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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