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ug 19. 2020

무인 (武人)

진천 신잡 장군 묘

조선시대에 양반이 되기 위해서는 문인 혹은 무인이 되어야 하며 대부분 과거 혹은 조상의 음보로 되는 경우가 많다. 양쪽의 관료를 합쳐 양반이 되는데 보통 역사 속에서 문인이 무인보다는 더 대우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인 혹은 군인은 어떤 길을 걷는 것이 바람직할까. 흔히 사대부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가리키는 말로  송 대 이전에는 관료 신분층을 가리켰지만, 송 대 이후에는 과거를 통해 등용된 문신 관료들을 의미한다. 

평산 신 씨인 신잡과 그의 동생 신립은 모두 임진왜란 때 활동하였던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비변사 당상으로 활동하였던 신잡은 1583년(선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지평(持平)·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판·형조참판을 지내면서 병조참판을 거쳐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다. 진천에 가면 신잡의 묘가 있는데 경사가 상당한 편으로 허벅지에 힘을 제대로 주고 올라가야 한다. 

신잡 장군의 초상이 신잡장군릉의 아래에 자리한 사당 안에 있다. 1593년 다시 기용되어 밀양부사·형조판서를 거쳐 특진관(特進官)·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600년에는 호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 겸 세자빈객이 되었는데 여러 주요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죽은 뒤에 이곳 진천에 사당이 세워지고 사액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고려 개국 당시 왕건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신숭겸이 평산 신 씨의 시조인데  충헌공(忠憲公) 신잡(申磼)[1541~1609]이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로 낙향하면서 세거 하기 시작한 충청북도 진천군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이다.

진천군에는 평산 신 씨 문희공파·제정공파(齊靖公派)·사간공파가 주로 거주하며 노은 영당과 묘소의 입구에는 진천 신헌 고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호]가 자리한다. 백곡면 용덕리 용진마을에 조선 후기 문신인 신대구의 묘소 및 묘비가 남아 있다. 

저 앞에는 왜가리 서식지가 있는데 왜가리는 매년 2~3월에 와서 9~10월에 돌아가는 여름철새로 몸체는 회색빛을 띠며 활엽수에 둥지를 틀고 초여름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왜가리는 백로과에 속하는 큰 새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번식한다.

다른 묘보다 이곳에 세워진 문인의 상은 무언가 엄숙하고 무게감이 있다. 밤에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표정이 무척이나 엄하다. 

신잡의 첫째 동생은 신급이고, 둘째 동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결사 항전하다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이며, 셋째 동생은 임진강 전투에서 추격해 오는 적을 막다 전사한 신갈(申硈)이다. 신잡은 1608년(선조 41) 진천으로 낙향하여 지금의 이월면 노원리 서원마을에 서원을 건립한 뒤 이종학·김덕숭·이여·이부의 위패를 모시고 후진들에게 충효 교육을 하였는데 서원은 지금 흔적만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전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