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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3. 2020

신검을 잡다 (伐劍)

구미 벌갱이 들소리의 유래

후삼국시대에 초반 가장 강하게 일어난 국가는 후백제로 견훤은 백제의 후예를 자청하며 기세를 올렸다. 호족들의 세력을 규합하며 세를 늘려가던 고려의 왕건보다 더 강했지만 결국 고려에 병합이 되고 만다. 구미는 후백제와 고려가 전투를 벌였던 곳이기도 한데  견훤(甄萱)의 아들 신검(神劍)의 군대가 고려를 침공할 당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지산동 앞들에서 신검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 일대를 신검을 잡은 평야라는 의미의 벌검평야(伐劍平野)로 ‘발갱이들(발검들)’이라 불리게 된 유래이기도 하다. 

지산동의 앞에는 발갱이들이라는 넓고 기름진 들판이 있는데 지산동은  ‘원앞’과 ‘삽제(揷提)’ 두 마을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마을로 오래전부터 농사를 짓는 곳이었다. 소리는 모두 10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남아리랑을 시작으로 잡업노동요(어사용, 가래질소리, 망깨소리, 목도소리), 농업노동요(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와 마지막으로 세벌 논매기를 마치고 상머슴을 깽이말(걸채)에 태워서 마을로 흥겹게 돌아올 때에 부르던 치나칭칭나네로 끝을 맺는다. 

오래전부터의 농사짓기의 문화를 담아놓은 구미발갱이들소리의 전수를 위한 전수관이 운영되고 있다. 1999년 4월 15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고아읍 문성리 거주 백남진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지산동을 중심으로 들판 주변의 괴평리와 문성리 일대의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민요 보존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역사적 성지라는 의미와 함께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가 담긴 곳이다. 

혼자 불러 시름 잊고 여럿이 불러 흥을 더하고, 들판을 울리는 발갱이들소리의 고유제는 유래비 고유제를 통하여 동민들이 화합하고, 올해의 풍년농사와 가장 살기 좋은 지산동이 되길 기원하는 행사의 중심이다. 

1995년 5월 8일 구미발갱이들소리(경상북도 무형문화제 제27호) 유래비를 건립한 기념으로,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구미발갱이들소리 유래비 고유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에서도 많이 부르기 때문에 노동요 '치나칭칭나네'는 많은 사람들이 놀이를 할 때 여러 사람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부르는 경상도의 대표적인 노래로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데 보통 많이 알려진 '쾌지나칭칭나네'의 지역적 변이형이다. 함께하는 노동보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 이때에 지역의 소리는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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