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함께 하는 것 (短篇)

단절, 선택, 사랑에 대한 단상

그녀에게 한여름의 개도는 아름다웠지만 마치 세상과 단절이 된 것 같은 곳이었다. 코로나 19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혼자 사는 섬 같은 곳이랄까. 그렇지 않아도 격리 아닌 격리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많기에 그들의 일상이나 만남 혹은 하루의 일탈을 때론 SNS로 접하기도 했다. 여수에서도 끝에 자리한 섬 개도(蓋島)는 주위의 작은 섬을 거느린다는 뜻으로 ' 개(蓋)' 자를 써서 개도로 부르는 섬인데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세상과 단절되기 위해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데 개도 막걸리와 섬에서 생산되는 방풍나물 이야기를 찍으려고 들어온 것이다.


세상에는 혼자 사는 이야기로 가득 차서 넘치기 시작했다. 혼자 밥 먹는 이야기, 혼자 노는 이야기, 혼자 여행 가는 이야기, 혼자 시간 보내는데 혼자 사는 지인의 방문이야기 등 이야기와 함께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단절된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예전처럼 한 사람과 오래도록 관계를 지속하면서 산다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제 사람의 인생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서 사는 때가 된 것이다. 그녀는 어제 찍은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다가 문득 최근의 TV 프로 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같이 사는 여동생의 전화였다.


그녀는 무척 차분한 목소리로 받았다. "여보세요~"

"언니 일어났어? 거기는 어때?"

"여기?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아서 참 좋아. 여기는 코로나 19를 신경 쓰는 사람도 거의 없어."

"그래? 여기는 가족 확진자가 나와서 난리인데 거기는 조용한가 봐."

"이곳은 시끄러울 수가 없는 곳이야. 개도라서 그런지 개소리만 들리고 가끔씩 보는 면장 할아버지 외에는 사람 소리는 별로 들을 일이 없어."

"오래간만에 휴가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잘 쉬다와."

"그러게 한 여름에 휴가도 보내고 일도 하고 코로나 19 걱정도 안 하고 안성맞춤이네."

"언니 심심할까 봐. 전화해봤어. 나 지금 나가봐야 해~"

"그래~ 전화할게~"


동생 하경이는 최근에 남자와 만나기 시작했다. 두어 번 함께 본 적이 있던 오래된 지인이었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코로나 19로 만남이 고민될 때 만남을 시작했다. 하경이는 어릴 때부터 주변 환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 역시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해외에서 들어온 관계로 지금은 자가격리 1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숙소를 나오면서 대충 머리를 묶고 모자를 하나 썼다. 동네를 마실 나가듯이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개도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초등학교까지 있는 어엿한 면단위의 지역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벽화로 어린 왕자도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왕자는 혼자 사는 삶에 최적화된 캐릭터가 아닌가. 간혹 이상한 지구인들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굳이 대화를 지속하는 대상은 여우뿐이다. 벽화를 보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차피 서울에서도 재택근무로 바뀐 덕분에 개도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오라는 팀장의 배려가 있어서 남는 것은 시간이었지만 역시 비자발적으로 주어진 시간이어서 그런지 하루 이틀을 고민만 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대청에 앉아 있다 보니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어 졌다. 어린 왕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떻게 썼을까.


개도는 참 이상한 이름의 섬이로군! 사람도 없고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네... 내가 생각하는 어린 왕자의 사랑이야기는...


"사랑은 조용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해. 혼자서 사는 것이나 둘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한 거야.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갈망하면서도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잖아. 자신에게 남겨진 행복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행복해지면서 넘쳐흐르는 행복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내는 시간의 행복이라는 술일 거야."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어린 왕자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쓰고 그 남자에게 보내려다가 그냥 저장만 해두었다. 30여분쯤 있었을까. 면장 할아버지가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면서 문을 두드렸다. 개도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싱싱한 해산물과 섬에서 생산되는 나물의 밥상이 무척 입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이날 아침은 활꽃게와 애호박, 된장을 넣은 꽃게 찌개였는데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담백함과 시원함을 맛보게 해 주었다. 항상 감사하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한상 차림이었다. 무척이나 말이 없으신 면장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화가 많지가 않았다.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더 먹고 싶었으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터라 자제를 했다. 감사하게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완전히 단절된 것 같은 시간에도 선택도 여전히 있었다. KTX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잠시만 머뭇거리면 선택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지금 이 단절된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선택의 시간이었다. 굳이 그렇게 바쁘게 살 필요가 있었던가. 간단하게 세면을 한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대문을 나섰다.


돌담길을 걸으면서 간혹 만나는 나이 드신 분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마을마다 우물이 하나씩은 있었다. 섬에서 물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원일 것이다. 어느 곳에 있는가에 따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달라질 수 있다. 그 남자와 나에게도 선택의 의지는 있다. 모든 사람의 사랑이 하나로 귀결될 수는 없다.


그녀는 아무도 바라보는 사람이 없지만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고 하늘하늘한 푸른색의 창이 있는 모자를 쓰고 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옆에는 때론 거북손이 함께하기도 하고 멀리 바다도 바라보았다. 혼자 사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함께하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물을 한 통 들고 천천히 개도의 갯바람 길을 올라 기암절벽이 보이는 곳에 섰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경아. 섬에서 시간은 보낼 만 해?"

"응 오빠. 섬 생활도 나름의 매력이 있네. 먼 곳에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멀리 있는 거 같지도 않아."

"그랬구나. 오빠도 이제 일주일 있으면 자가격리가 끝나니까 그때 보자~"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삼시세끼 잘 챙겨주니까 먹는 것은 걱정 없겠네."

"편해 규칙적으로 식사하니까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지만 언제 이런 시간을 보내보겠어."

"그러고 보니까 오빠도 나도 다른 의미의 단절과 선택을 하고 있네."

"ㅎㅎㅎ 그래? 그럼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해?"

"사랑? 뭐 그런 거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갑자기 사랑이야기를 하네."
"아니 그냥 문득 생각난 거야."

"선경이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오빠 격리 끝나고 만나면 뭔가 할 말이 많겠다."

"간혹 이렇게 섬에서 보내는 것도 좋겠어. 아무튼 오빠도 주는 대로 잘 먹고 내가 뭔가 보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기대해봐."

"뭔지 모르지만 많이 궁금하다. 빨리 봤으면 좋겠다. 조심해서 올라오고 다음 주에 보자."

"그래~ 끊어~"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개도의 풍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로는 무언가를 볼 수 있기 전에 믿어야 하기도 하지만 생각나는 모든 것을 믿을 필요도 없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선가에서 온다면 혼자서 단절된 상태에서 있다가 사람과 사람을 선택한 다음 시작되지 않았을까. 함께 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사랑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움직였을 때 당신의 사랑도 시작이 된다.


"내 사랑은 어디부터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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