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물치지 (格物致知)

매학정에서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다.

오래된 학문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학문에만 머물러 있지만 터닝포인트를 넘어서면 다른 분야까지 시야가 넓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자본의 이동이나 돈의 본질과 그 흐름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돈을 벌고 사용하는 주체처럼 보이지만 사실 돈이 주체이고 사람은 그걸 실현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벌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이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아는 것을 극진히 해야 할 것이니 아는 것을 극진히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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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찾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의 기본적인 것은 자신 내부에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너무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에서 찾고 싶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원하는 것은 찾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게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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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어 찾아가 본 매학정은 이번이 두 번째다. 수행의 꽃이자 선비의 꽃이라고 부르는 매화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매화정은 홀로 서 있는 정자다. 홀로 살아가면서 자신 내부에 충실했던 사람의 공간이다. 율곡 이이는 이곳에 매학정 기문과 시판을 남겼으며 이황의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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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4대 명필은 안평대군 이용,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 고산 황기로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 황기로가 이곳에 은둔하면서 살았다. 지극히 깨달으면 무언가를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을 수 있다. 매화나무와 학이 좋아 매학정이라고 부르던 정자의 주인 황기로는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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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자유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함께 말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대개 사람의 마음이 신령한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하에 사물의 이치가 없는 데가 없지만 오직 이치에 궁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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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속에 신령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 바로 황기로가 아닐까. 매학정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됐으나 1654년(효종 5년)에 다시 지었고 1862년(철종 13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됐다가 1970년에도 크게 보수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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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렸을 때는 지혜가 지극된다는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한 것과 거친 것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고 내 마음 전체의 작용이 밝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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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것만 조금만 감내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홀로 사색에 잠겨 있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매학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금도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언덕에 정자를 지어놓고 은둔의 삶을 살았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이후)가 매화나무를 사랑했던 것은 자연의 지극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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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는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모든 이는 내 마음에 있으며 사물의 바름과 부정도 내 마음으로 판단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아 결국 주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 잃는 일이다. 황기로가 머물렀던 구미의 매화정에서 격물치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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