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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1. 2020

왕족이 되는 일

홍우경과 정인 옹주의 묘소

누군가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는 코로나 19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만큼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 대신 묘소까지 가는 길의 이정표가 잘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근처까지 가서 주변을 돌아다녀야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지도만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묘소로 가는 10번 중에 1~2번은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차로 가기 힘든 곳도 많고 때론 길이 아닌 것 같은 곳을 지나쳐서 갈 때도 있다. 

최근 일본 천황의 공주가 일반인과 결혼하는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아직도 일본은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왕족이 되는 그런 이슈가 있다. 조선시대에 왕족과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남자가 왕족과 결혼하게 되면 부마가 된다. 임진왜란 때의 왕이었던 선조의 부인은 후궁을 포함해서 무려 10명이었다. 역사 속에서 영창대군, 임해군, 광해군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다른 아들과 딸들도 상당히 많았다. 

선조의 빈 중 정 빈민 씨가 있었다. 다른 빈으로 인빈 김 씨의 소생 중 원종이 있는데 원래는 대군이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고 나서 추존이 된 것이다. 원종의 부인이 그 유명한 인현왕후다. 정빈민씨의 딸 중 정인 옹주가 있는데 그녀는 남향홍씨인 홍우 경과 결혼한다. 

진천에는 홍우경과 나란히 묻힌 정인 옹주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남양홍씨는 고구려 대 중국에 들어온 홍천하의 후손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의 딸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지고 품계가 여러 차례 올라 봉헌대부(奉憲大夫)에 이르게 된다. 

홍우경은 성품이 검소했다고 알려져 있다. 왕족과 결혼하게 되면 부마에게 저택을 하사하는 관례가 잇는데 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이첨(李爾瞻)·한찬남(韓纘男) 등의 음모를 성토하다가 10간(奸)으로 몰려 관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복권이 된다. 홍우경은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추증되었다. 왼쪽이 홍우경의 무덤이고 오른쪽이 정인 옹주의 묘이다. 

봉분은 각각 8매의 호석(護石)을 둘렀으며 묘표석·상석·동자석·문관석·장명 등·망주석은 일괄하여 세워두었다. 부부의 묘 바로 앞에는 묘포석이 있다. 묘표석은 높이 150㎝·폭 59㎝·두께 21㎝의 비갈형(碑碣形)이다. 

정인 옹주의 생모 정빈 민씨는 여흥 민씨 민사준의 딸로,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종2품 숙의로 정식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정빈 민씨는 선조와의 사이에서 정인 옹주를 비롯한 2남 3녀를 낳았다. 

정인 옹주의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다.  정인 옹주와 홍우경의 묘는 1988년 9월 30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옹주는 공주와 함께 귀한 신분으로서 품계를 초월한 외명부이다. 남편은 왕의 사위로서 종 2품의 위(尉)인 자의대부(資儀大夫)·순의대부(順儀大夫)로 의빈(儀賓)에 봉작되었다. 홍우경은 이른 나이인 3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부마(駙馬)가 죽을 때에도 그 품계에 알맞은 대우를 해 조회를 거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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