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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3. 2021

윤동주의 길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전라남도 광양에 가면 윤동주의 이름이 붙여진 길이 있다. 일명 윤동주 길이라고 붙여진 이 길처럼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도 연상케 한다. 윤동주의 길에서는 길과 돌담이 등장하는데 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그런 자아 성찰과 탐색의 연장성이며 돌담은 평생을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와의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할 수 있는 위치라 하여 '망뎅이'라 하였던 이곳은 이를 한자로 '망덕'이라 표기했다. 그 산 아래에서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윤동주의 길을 걷다 보면 선창가 횟집들 사이에 삼각지붕의 단층집이 하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집은 국문학자인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의 집으로 그는 선배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1944년 1월 일본군에 끌려가면서 윤동주의 원고를 어머니에게 맡겼다. 독립이 되면 그의 원고를 연희전문학교로 보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으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윤동주 길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아름다우면서도 의미 있는 시를 남겼던 윤동주는 살아생전에 시를 발표해보지 못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이곳에서 보면 멀리 하동 땅이 보인다. 망덕포구와 지리산, 섬진강이 함께 어우러져서 내려가는 공간이다. 

기록되지 못했던 그러나 후대에 기억되지 못했던 정병옥과 윤동주의 이야기가 있다. 별 헤는 밤을 읽으면서 흰 그림자에 그려진 삶을 아스라하게 기억해볼 수 있다. 

이곳 망덕포구는 백두대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ㅇ큰 산줄기의 주된 맥이 남쪽 바다와 만나 끝나는 망덕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그와 선배 윤동주의 운명적 만남으로 남해 바닷가에 꿈을 키웠다고 한다.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젊은 시인 윤동주는 일본의 형무소에서 죽었다. 정병욱은 살아 돌아왔고 1948년 시는 세상으로 결국 나왔다.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윤동주는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서 현실의 어려움과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을 시에 녹여내었다.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었기에 필자도 시를 처음 접하게 된 어린 나이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매년 걸어왔던 길이 맞는 것인지 돌아보고 새롭게 노선을 조정한다. 오늘도 여전히 걸었던 길에서 부끄러움이 없었나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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