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각과 초연물외
한 겨울에도 옥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은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물질적인 것에 구속되지 않고 초연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아주 잠깐이라도 잊어볼 수는 있다. 한 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계획한다. 가장 좋은 것은 유익한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유익한 습관이란 복리 이자와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크게 돌아온다. 인생은 습관이라는 독립변수의 영향을 받아 변화되는 종속변수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을 넘어서는 깨달음은 없다. 온고지신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만하다. 매년 와봐도 대전 비래동 느티나무의 수령은 변하지 않았다. 안내판을 세울 때는 수령은 매년 바꿀 수 있도록 해두면 좋을 듯하다. 가끔은 이렇게 나이가 변하지 않는 느티나무같이 나이가 고정될 수가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하부 기둥은 굵은 원기둥이고, 마루 기둥은 가는 사각기둥으로 기둥머리에는 쇠서[牛舌] 모양의 부재를 끼웠으며, 창방으로 도리를 받고 그 위에 서까래를 얹어 지붕을 얹은 옥류각은 항상 당당해 보인다. 옥류각에는 송준길이 일찍이 지은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層巖飛玉溜)’이라는 시구(詩句)가 남아있다.
호서지방에 자리 잡은 논산 정착 이후 불과 100여 년 만에 회덕의 은진 송 씨는 연산의 광산 김 씨, 노성의 파평 윤 씨와 더불어 호서삼대족(湖西三大族)으로 자리 잡았다. 조금 더 지역을 확장해서 보면 영일 정씨, 옥천 전씨, 청풍 김씨, 문화 류씨, 해주 오씨, 전주 이씨, 옥천 육씨등이 있다.
후배가 필자에게 한 번 소개하는 글을 부탁했던 이사동은 대덕구 송촌동과 함께 지역의 대표 사족(士族)인 은진 송 씨의 집성촌이다. 동춘당 송준길과 함께 당대 유학자인 송시열도 회덕을 자주 오갔다. 우암 송시열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세 살에 스스로 문자를 알았고, 7세에 형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썼다 한다.
8세가 된 송시열은 이종인 송이창(宋爾昌)의 문하에서 그의 아들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학문을 닦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후일 평생 뜻을 같이한 계기가 이때 마련된 것이다. 초연물외를 생각했던 송준길과 정치가로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던 송시열의 길은 서로 달랐다.
옥류각의 뒤로 올라오면 계족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자주 만나게 되는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의 경내가 아닌 산자락에 자리한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다.
필자에게 올해의 키워드는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신이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을 묻자 공자가 한 말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