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당포성지 같은 그림
예술작품에서도 그렇듯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무형의 가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미술 작품과 밀접하게 연결이 된다. 미술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림같이 보는 풍경이 있다. 이런 날은 그림이 좋은 날로 통영의 당포성지에는 벚꽃도 일부 피어 있었지만 초록의 감성과 연분홍, 바다의 코발트블루가 어우러진 그런 그림 작품이었다. 그날만 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그림으로 물감만 있었다면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갈 수 있는 삼덕항에서 바로 위쪽으로 올라오면 색감이 좋은 날 둘러보면 좋은 당포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당포성지가 자리한 장군산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삼덕항은 다도해의 낙조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삼덕항은 매물도, 국도, 좌사리 등의 욕지권 바깥까지 출항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고목은 아니지만 고목처럼 보이는 나무의 뒤로 잘 쌓인 당포성지의 성벽이 보인다. 옆에 살고 있는 민가의 주인은 매일매일 이런 풍광 속에 살아가니 예술을 하고 싶어 지지 않을까.
위에 올라와서 보니 오래간만에 만나본 통영의 바다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멋진 풍광이지만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지 않기에 이 순간만을 만끽해 본다. 당포성지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형성하는 고려·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축 진성(石築鎭城)이며 평산성(平山城)으로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남쪽 방향으로 성을 쌓았다.
풀에서 일어나는 봄의 향기와 더불어 멀리서 불어오는 바다의 향기 그리고 어떤 향인지 모르겠지만 벚꽃에서 나는 향기라는 생각이 든다. 수려한 통영 바다의 풍광을 뒤로하고 성을 올라 뒤를 쳐다보면 바다향을 머금은 아련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청명하게 푸른색의 하늘이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하얀색의 구름이 옅게 흩뿌려진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늘색보다 구름 색인 흰색이 더 많이 보인다. 영혼이란 강한 것보다 약한 것에서, 풍부한 것보다 여린 것에서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서 피어난다. 진정한 가치는 결핍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너비 4.5m로 통제영이 이곳을 요충지로 사용할 때 만호(萬戶 : 武班 從四品의 벼슬)가 이곳을 관장하였다. 견내량의 거센 물결을 이곳에서 느껴볼 수는 없지만 마치 격랑의 몰아치듯이 저 앞에서 물길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해안 지역에 설치된 수소(戍所)를 증설한 데 이어 산성(山城)·읍성(邑城) 등 방어시설을 강화하고, 화포(火砲)를 개발함으로써 왜구 격퇴에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으며 최영 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성을 쌓았고 임진왜란 당시 쳐들어온 일본군을 막았던 곳이기도 하다.
걸어서 내려오다 보니 당포성지의 한편에 피어 있는 동백꽃이 눈에 뜨인다. 어떤 꽃은 떨어져 있고 어떤 곳은 피어나고 있었다. 동백꽃과 인연이 깊은 건지 많이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백과 인연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는 동백꽃이기에 그런 것인가.
마침 오늘은 그림이 좋은 날처럼 주문했던 그림 모네의 화가의 정원이 온다는 문자가 왔다.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던 모네는 1883년 파리 북서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작은 마을 지베르니를 발견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온갖 꽃과 나무로 ‘색채의 정원’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곳 역시 바다의 정원이라고 부를만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