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일

세종이 인정했던 최윤덕의 흔적

"곧고 착실해 거짓이 없으며, 근신(謹愼)해 직무를 봉행(奉行)하므로 태종께서도 인재라고 생각하시어 정부(政府)에 시용(試用)했노라. 전조(前朝)와 국초(國初)에 간혹 무신(武臣)으로서 정승을 삼은 이가 있으나, 어찌 그 모두가 윤덕보다 훌륭한 자이겠는가. 그는 비록 수상(首相)이 되더라도 또한 좋을 것이다. 다만 말이 절실하지 못한 것이 많다. 하륜(河崙)이 정승이 되어 모든 정무(政務)를 처리할 때에, 조영무(趙英武, 무인으로 처음 재상에 오른 인물)가 거기에 옳으니 그르니 하는 일이 없었다. 만약 한 사람의 훌륭한 정승을 얻으면 나라 일은 근심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 세종실록 권 56, 세종 14년 6월 9일


세종이 이렇게 언급한 사람은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역사책에서 쓰시마(대마도) 정벌과 여진족 정벌을 통해 재상까지 올라간 최윤덕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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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은 창원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집터만 있고 유허지를 알리는 알림판만 남아 있다. 최윤덕의 별호는 '축성대감'이라고 한다. 축성(築城), 즉 성을 쌓는 대감이라는 뜻이다. 최윤덕은 이처럼 전쟁이 없을 때도 실전 경험을 가진 장수의 경험을 살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추진했던 사람이다. 크던 작던 한 사람의 인생에 국한되든 간에 준비한 사람에게는 리스크가 최소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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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걸어서 올라가 본다. 이곳은 과수원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데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대상이 권력의 최정점이라면 더욱 그럴 수가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대왕이라는 세종은 최윤덕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친히 술잔을 따르고는 세자로 하여금 역시 술잔을 따르게 했다. 이때 최윤덕에게 명해 일어나서 술을 받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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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석축이 쌓여 있는 저곳이 바로 최윤덕의 유허지라고 한다. 정승골이라는 지명과 함께 주변에서 발견된 주춧돌과 기와 조각, 우물터 등은 이곳이 장군의 유허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최윤덕이 명실공히 명장으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파저강(婆猪江) 인근의 여진족 이만주(李滿住)를 정벌하고, 평안도에 4군을 설치하는 공을 세우면서부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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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살펴보니 터는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면서 과수원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사방이 트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유허지를 살펴보았으니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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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다 보니 작은 나무에 핀 벚꽃이 눈에 뜨인다. 문치를 중요시했던 조선 시대에는 무인이 재상의 반열에 오르는 일이 드물었는데 무인으로 아버지는 조선 초기에 뛰어난 무신이었던 최운해(崔雲海)의 아들인 최윤덕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말을 잘 탔고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최윤덕은 공무가 끝나면 공청 뒤 빈 땅에 밭을 일구어 직접 채소를 기르며 몸소 근면함을 보였으며 목민관으로 지방에 나가 행정을 살필 때, 검소하고 청렴하기로도 유명해 여러 일화를 남겼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곳과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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