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성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의 합포성지

조선 개국에 대해서 많이 접한 편이어서 배극렴이라는 인물의 이름은 기억은 하고 있었다. 그는 1등 개국공신이 되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으며,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이 된 사람으로 1392년 11월 세상을 떠났으며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정승에 올랐던 사람이다. 1388년의 요동 출병 때 우군의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우군 도통수(右軍都統師)인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 참여,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을 도와주면서 이성계의 라인에 선 사람이다.

MG0A4336_resize.JPG

도심 속에 있는 합포성지는 마을 분들이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그냥 평범해 보이는 곳이다. 그냥 석축으로 쌓여 있는 것 같은 공간에 주변으로 펜스가 쳐져 있었다. 이곳이 바로 1378년(고려 우왕 4)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부임한 배극렴이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후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으로 사용이 되게 된다. 구축당시 성의 둘레는 1.3km이고 높이는 4미터라고 한다. 성 안에는 의만창과 회영고 등의 건물과 함께 5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MG0A4337_resize.JPG

주변으로는 지금 이곳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의 주택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마을 분들에게는 그냥 이곳은 바로 앞마당 같은 느낌처럼 다가올 듯하다. 성의 외벽은 아랫부분에 큰 받4침돌을 두고 견고하게 쌓아 올렸는데 이런 방식은 조선 전기 남해안의 읍성 축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MG0A4340_resize.JPG

1376년(우왕 2)에는 진주도원수(晉州都元帥)로 진주에 침략한 왜구를 반성현(班城縣)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이듬해에는 우인열(禹仁烈)을 대신해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어 왜구 방어에 공을 세웠다. 병영이 있는 창원 인근의 합포(合浦)에 왜구 방어를 위한 축성을 주관, 완성했는데 조선시대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慶尙右道兵馬節度使營)의 번성(藩城)이 바로 이곳 합포성이다.

MG0A4343_resize.JPG

지금 보아도 석축의 견고함이 남달라 보인다. 주변으로는 공영주차장이 있고 주민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배극렴은 1378년 경상도원수로서 욕지도(欲知島)에서 왜구를 대파하고, 겨울에는 경상도도순문사로서 하동과 진주에 침략한 왜구를 추격, 사주(泗州)에서 크게 이겼다.

MG0A4346_resize.JPG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합포성지를 살펴본다. 집의 앞마당에서도 바로 옆에 있는 성을 볼 수 있다. 합포는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겪은 곳이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三別抄)가 침입하여 전함 20여 척을 불태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MG0A4351_resize.JPG

지금은 도심이지만 예전에는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에서 세곡을 운반하는 가장 큰 포구였던 곳이기에 방어성이 필요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도 합포 서쪽에 마산포(馬山浦)가 있었으며 합포의 지명은 골포에서 나온 것으로 ‘큰 포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의 방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