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피어날 응천 벚꽃 십리길
자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알고리즘은 단연코 진화라고 볼 수 있다. 진화는 환경에서 살아남고 번식하는데 유리한 존재는 자신의 형질을 다음 세대의 더 많은 존재에게 물려준다. 때로는 사이에 돌연변이가 나타나 새로운 형질이 추가될 수 있는데 새로운 형질은 개체군 내에 존재하는 기존의 형질보다 더 나을 수도 있고 더 나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자연의 존재들은 대부분 진화의 결과물이다.
남해와 중부지역 등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다가 아직도 단단하게 꽃송이로 남겨져 있는 벚꽃은 처음 만나보게 된 응천 벚꽃 십리길이다. 기상청은 올해 서울의 벚꽃이 1922년 관측 이래 99년 만에 가장 이른 24일에 폈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역대로 가장 일렀던 지난해보다도 3일 더 빨랐다고 한다.
벚꽃처럼 한 개체에 많은 꽃이 피는 다화성 식물은 한 나무 내 임의의 한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의 꽃이 활짝 피었을 때를 공식적으로 개화한 것으로 본다. 그 기준이라면 응천 벚꽃 십리길의 벚꽃은 개화하려면 1주일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매년 화사하게 핀다는 응천 벚꽃 십리길은 알고 있었지만 때를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일찍 찾아온 십리길을 걸어보았다. 기상청은 올해 벚꽃이 평년보다 빨리 개화한 이유에 대해 2∼3월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일조시간도 평년보다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만개 시점부터 일주일 가량 지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대체로 이번 주말 개화를 시작하는 점을 고려할 때 서귀포에서는 3월 31일 이후, 남부지방에서는 3월 31일~4월 3일경, 중부지방에서는 4월 5~11일 경이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바로 음성의 응천 주변이 해당이 된다.
개화하기 직전에 길은 이런 모습이다. 벚꽃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다른 색감을 주는 길이다. 봄과 꼭 맞는 그 특유의 풍부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벚꽃이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긴장시키는 요즘, 미리 봄을 맞이하는 의미로 가슴을 따뜻하게 조용하고 사뿐히 다가와주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고스란히 내려앉게 하는 자연의 변화가 느껴진다.
걷기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에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딱 적당한 라틴어는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Si vales bene, valeo)라는 문장이 아닐까.
조용하게 응천 벚꽃 십리길에서 건너편을 지켜보았다. 벚꽃이 피고 나서 한참이 지나야 녹색으로 변하게 될 건너편의 풍경이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
꽃이 피는 의미의 개화는 예로부터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계절에 따라 새로 불씨를 만들어 여러 주방에서 쓰면 음양의 기운이 순조롭게 되고,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는데 이를 개화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01년(태종 1) 3월에 개화령을 내려 전국에 시행하게 하였는데 특정한 날에 나무를 비벼 새 불씨를 만들어 각 궁전·관아·대신들의 집에 나누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