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헌이삼 장군종택의 진달래
보통 사람들이 봄에 가장 많이 보는 꽃은 벚꽃이다. 그렇지만 봄에 산에 가면 불길처럼 온 산에 진분홍의 색을 보여주며 번져나가는 한국 대표 꽃은 진달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사뿐히 지르밟고 갈 수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달래는 격조 높은 풍류 놀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진달래로 담근 술이 맛있는 것을 잘았는데 꽃잎으로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통은 한 번에 다마시는 편이다.
오래간만에 논산에 자리한 백일헌 이삼 장군 종택을 찾았다. 우리 집도 아니고 친인척과 관련된 집도 아닌데 자주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진달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진달래는 옛날 보릿고개 때 허기를 달래주던 식용꽃으로 꽃잎을 생으로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에 '참'자를 붙이면 먹을 수 있고 먹지 못하는 식물에는 '개'를 붙이는데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부르는 반면 철쭉은 먹지 못한다고 해서 '개꽃'이라고 불렀다.
참꽃을 두견화라고 부르는 이유에는 사연이 있다. 촉나라 황제의 이름이 두우였는데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망한 뒤 도망 다니다가 결국 나라를 되찾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원한은 한 마리의 새로 탄생하여 그 새를 두견이라고 하였다. 그 새가 온산을 돌아다니며 흘린 피눈물이 떨어져 진달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진달래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고 백일헌 이삼 장군 고택으로 들어가 본다. 우리 집은 아니지만 마치 편안하게 찾아온 가문의 집처럼 들어가서 돌아본다. 이삼 장군 고택은 1727년(영조 3) 이삼이 훈련대장으로 있을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조로부터 2등 공신 함은군에 피봉되고, 건립비를 하사받음에 따라 지은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이다.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마치 누군가가 달려와서 사랑방으로 안내하고 차와 식사를 제공해줄 것만 같다. 맛있는 장맛이 어우러진 소박한 한 상이라도 만족할 텐데 아쉽게도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먹어줄 의지는 충분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마당도 넓고 여유가 있는 집이다. 이 정도의 고택을 관리하는 것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백일헌(白日軒)은 영조가 ‘충절이 백일을 꿰뚫었다(忠貫白日)’는 뜻에서 이삼 장군에게 특별히 하사한 호다. 무반가로서의 전통을 잇고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한 인물로, 숙종, 경종, 영조에 이르기까지 문무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꼭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봄의 초기에는 무채색의 꽃이 먼저 선보이고 개나리나 진달래 등이 뒤를 이어가는 것만 같다. 작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충청 국학진흥사업을 통해 충남 논산시 상월면에 있는 ‘백일헌 이삼 장군 종택’에 대대로 전해져 온 유물 649점을 수집했다고 한다.
1727년에 지어진 이 집은 ㄷ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안채는 정면 다섯 칸, 측면 한 칸 반의 크기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앞에 사랑채와 행랑채, 그리고 안채의 안방 뒤편이 연이어져 있다.
이삼 장군 고택의 대문을 나와서 보티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저 앞에 노란색의 앙증맞은 벤치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함평이 씨 이삼 장군 후손들은 인근 파평 윤 씨 윤증 가문과 사제 관계에서 혼반 관계로까지 특별한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고 하는데 진달래로 담근 술을 서로 나누어 먹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