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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8. 2021

이순신의 생애

임진왜란 전정읍현감으로 있었던 이순신

선조실록 22년 12월 1일(1589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순신(李舜臣)을 정읍 현감(井邑縣監)으로 삼았다. 순신이 감사 이광(李洸)의 군관이 되었는데 이광이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겨 주달 하여 본도의 조방장(助防將)으로 삼았다. 유성룡이 순신과 이웃에 살면서 그의 행검을 살펴 알고 빈우(賓友)로 대우하니,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졌다. 과거에 오른 지 14년 만에 비로소 현감에 제수되었는데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 성적(聲績)이 있었다."

사람이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성공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패를 하는 방법도 있다. 실패를 잘하면 다시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정읍시청의 바로 옆에는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근무했던 것을 기념하는 충무공원과 충렬사가 자리하고 있다. 육지에서 이순신을 모시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정읍현감으로 오게 된 것은 세종대에 6진 4군을 설치하면서 두만강 유역의 둔전인 녹둔도에  이순신 장군이 근무하던 1587년에 현지의 여진족과 ‘녹둔도 전투’가 벌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백성들의 농사를 보호하기 위해 목책을 비운 사이에 여진족이 침략하여 크게 패했고 이후 반격을 가해 일정한 전과를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백의종군하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읍현감으로 2년간 근무할 수 있게 된다. 빠른 승진이 가능하며 류성룡의 강력한 추천으로 1년 4개월 근무 뒤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읍시가 성황산에 조성한 이 공원 내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가 있어 정읍 사람들은 충렬사공원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공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애향모충비가 세워져 있고, 홍살문을 지나자마자 충무공원의 문루인 선양루가 나오는데 선양루는 1985년에 건립된 건물이다. 선양루를 거쳐 계단을 오르면 역시 1985년에 건립된 효충문이 나온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이순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우(충렬사)가 있다. 

충렬사는 뒤로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서 그런지 유독 아름다워 보인다. 충무공원은 역사교육의 현장이자 시민들의 휴식처로 꽃과 나무로 깔끔하게 조경되어 있는 공원에는 분수연못과 물놀이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실패 없고 고민과 아픔 없는 인생이 앞으로 나아간 사례는 없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내면 적폐가 되는 것이다. 이순신은 수많은 해상전투에서 승리를 했지만 그전에는 수많은 실패와 늦은나이에 관직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고민과 고난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와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 일찍 겪는 것이 후에 자신의 앞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사례를 정읍에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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