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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6. 2021

경험과 독서

칠곡 인물들의공간이었던 동산재

삶을 변화하고 싶다면 항상 하던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탈피를 해야 한다. 그 탈피가 누군가를 만나본다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흐름을 의미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항상 쉽지가 않다. 차라리 직장을 다닐 때는 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고 몸을 쓰는 육체노동을 할 때도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딱히 새롭게 시도할 것이 없이 익숙해지면 똑같이 반복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맹자는 "대체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소체를 기리는 자는 소인이 되어 금수에 가깝게 된다."라고 하였다. 큰 몸과 작은 몸의 차이가 무엇일까. 

그냥 조그마한 공간인 줄 알았더니 갖출 것을 다 갖춘 공간이었다. 입구에는 홍살문 아래에 입구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한 지역에 3대를 위한 묘실이 일곽을 이룬 경우가 드문 곳으로 마치 정원과 고택이 함께 어우러져 마을과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곳에는 이도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붓으로 인명을 구한 사관이다. 왜관읍 매원리 출신으로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을 스승으로 섬겼다. 식견이 두루 미치고 학문이 넓고 행실이 반듯했다.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던 인간의 모습의 전형이기도 하다. 

독서는 나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키는 매력이 있다. 똑같은 인생은 결국 같은 나날 속에 삶이 계속 정체되게 된다. 

건물과 주변풍광을 보면서 동산재를 한 바퀴 돌아본다. 책을 읽지 못하겠거든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을 아는 독서에도 모두 방법이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남인을 대표하는 문신으로 영남에서 대동법을 최초로 시행했던 이원정을 모신 재실이 나온다. 모셔진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이원정(李元禎)의 호가 "귀암(歸巖)"이라 경모(景慕)한다는 뜻에서 경암재(景巖齋)라 하였다. 

이원정은 1673년(현종 14) 도승지에 오르고, 1677년(숙종 3)에 대사간·형조판서를 지냈다. 1678년(숙종 4)에 영남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할 때 오로지 그 일을 맡아서 늦추고 팽팽하게 함을 조절하니 백성들이 대동법을 지키면서 덕(德)을 기렸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가는 구조로 만들어진 저 건물은 붓으로 인명을 구했다는 사관인 이 도장을 모신 곳이다. 병자호란 때 사관(史官)으로서 어가를 따랐으며 또한 치욕적인 강화체결(講和締結) 때 청나라에서 척화 주장자(斥和主張者)의 명단을 요구하자 척화 주장자로 이름이 드러난 삼학사(三學士)의 이름만 쓰고 붓을 놓으며 “적(敵)의 요구는 사람 수를 정한 바 없는데 우리 스스로 많은 사람을 올려 희생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하여 많은 인명을 구했다. 

우연하게 찾은 칠곡의 동산재라는 곳은 칠곡에 입향하여 정착한 광주이씨의 3대 재사 3동이 있는 곳으로 광주이씨 석전문중의 대표 묘실이다. 낙촌 이도장의 선행을 기리기 위한 낙촌정, 그의 아들을 기리기 위한 경암재, 이원정의 아들 이담명의 별사 봉향을 위해 지은 소암재와 묘실이 자리하고 있다. 

칠곡의 동산재는 입구에서 들어가면 귀암공 이원정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경암재를 지나면 낙촌정과 소암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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