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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7. 2021

회덕(懷德)

대전의 중심지였던엣 공간

회덕(懷德)이라는 지역은 군이었던 곳으로 예전에는 읍내동을 에워싼 원촌동, 와동, 연축동, 법동, 송촌동 등을 포함하였던 곳이다. 지금처럼 대도시가 아니라 지방의 군규모였던 과거에는 이곳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다. 회덕이라는 이름은 논어 이인편의 '대인회덕 소인회토'(大人懷德 小人懷土·대인은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고향을 품는다)라는 말을 인용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회덕에서 양반가들이 많아 모여 살았던 곳은 은진 송 씨의 집성촌인 송촌동 지역이겠지만 일반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은 이곳 읍내동 지역으로 생각이 된다. 이곳에는 대전 읍내동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350여 년의 동안 이곳을 지켜왔다. 

읍내동은 오래된 보호수가 자리한 이곳과 계족산의 일부를 포함하여 회덕향교, 아래로는 회덕동 행정복지센터, 대전조차장역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의 관아는 회덕동주민센터 뒤편의 경부선 철도부지 근처 혹은 회덕파출소 뒤 야산의 향나무, 느티나무가 있는 터로 추정하고 있다.  회덕동주민센터는 회덕현의 무관들의 집무처인 장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은 읍내동의 전 지역과 계족산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 주변을 돌아보면 옛날에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읍내동 암각군도 포함이 된다. 

읍내동 암각군을 보려면 안쪽으로 걸어서 내려가면 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암각군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읍내동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당시 조선말의 혼란한 시기에 민란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1862년(철종 13년) 5월 12일 삼남지방의 민란에 영향을 받아 봉기한 농민군은 억울한 일을 호소하기 위해 관아에 몰려가서 회덕현감 김낙균을 욕보이고, 평소 원한이 있던 부정한 지방관리 이서와 부호의 집을 불태우기도 했었다. 

저 우물처럼 보이는 것이 읍내동 암각군이다. 전체적으로 작은 기암괴석이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의 공간이다. 

도심 속에서 느끼는 새로운 공간이자 옛날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보통 암각군이라고 하면 불교등에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읍내동 암각군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음내동암각군에서 내려오면 후곡공원이 나오고 그 옆에는 제월당 및 옥오재가 자리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 조선 숙종 때 문신 송규렴(宋奎濂)이 강학하던 별당 건물로서 그의 호를 따 제월당이라 한다. 옥오재는 송규렴의 아들인 송상기(1657∼1723)가 지은 건물이다. ‘옥오(玉吾)’는 차라리 깨어지더라도 옥(玉)을 택하겠다는 소신이 담긴 뜻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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