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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8. 2016

해어화(解語花)

말을 할 줄 아는 꽃의 인생 

기생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후로 여자는 자신의 매력을 팔아 어필하는 직업들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영화 300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여성 역시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무녀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권력의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고대국가로 재편되면서 일부가 기생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가 장애를 가지지 않는 이상 모두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기생들을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고 했던가. 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들의 지적 수준은 남성보다 높지 않았다. 글을 읽는 사람의 수는 소수였고 일부 양반 여식들은 배움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아낙들은 아는 것이 적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용모가 고운 여자를 골라 춤과 노래를 익히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했기에 양반들에게 그들은 소통이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대화가 되는 존재이기에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걸 한자로 표현하면 해어화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권번이라는 기생 집단들이 있었다. 권번은 서울, 평양, 대구, 부산 등 대도시에 있었는데 해어화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때이다. 마지막 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 학교 ‘대성 권번’.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창법으로 최고의 예인으로 불리는 소율(한효주)과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연희(천우희)는 선생 산월(장영남)의 총애와 동기들의 부러움을 받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권번이 사라졌기 때문에 경성의 기생학교 대성 권번도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과도기에 사랑하는 여자와 그리고 다른 여자를 품고 싶은 남자와의 치정극을 다룬 영화가 해어화다. 소율이 사링했던 연인 윤우는 그 친구인 연희와 친해지면서 급기야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이게 된다. 이로 인해 소율과 윤우는 조금씩 틀어지고 어릴 때부터 친했던 소율과 연희 역시 우정에 금이 가게 된다. 우정이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랑 앞에 우정은 바람 앞에 등불일 뿐이었다. 

여자의 우정과 남자의 우정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해어화에서는 여성의 우정은 사랑 앞에 종이처럼 쉽게 찢어지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여자의 사랑은 상대방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사람이 되는 순간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자신의 여자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세팅하려는 사람은 많지는 않다. 일부 소유욕이 강한 남자들이 여성을 제어하려고 하지만 대부분 그대로 놔둔다. 그런 부분을 여자들은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생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심도 깊게 그려내고 소율과 연희와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루어주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해어화를 보면 그냥 기생이라는 콘셉트를 활용하여 그린 치정극 혹은 진부한 사랑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애국 충청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사람들이다. 그냥 술집 여자가 아닌 당대의 지식인들의 한 축을 형성했던 부류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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