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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2. 2021

해송(海松)

남성적인 곰솔, 여성적인 소나무

슬기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신적으로는 여러 고립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것 역시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바다에서 방풍림은 파도가 포말(泡沫)이 되어 날아다니는 소금 물방울을 맞고도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은 곰솔이 아니면 다를 나무가 감당하기가 쉽지가 않다. 자연이 주는 그 거친 바람에서도 항상 푸른 곰솔을 보면 가끔 필자를 돌아보기도 한다. 

해풍을 견디면서 살 수 있는 강인한 곰솔을 남성적이라고 하며 우아한 소나무를 여성적이라고 한다. 보통은 바다를 가야 볼 수 있는 곰솔이 논산의 내륙지방인 갈산리에 당당하게 풍채를 뽐내고 있었다. 소나무와 곰솔은 유전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이기에 남녀 사이와 정말 닮아 있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곰솔의 위세가 당당하다. 

갈산리 곰솔이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은 북벌의 대표 군주였던 효종의 신하 권육의 죽음을 슬퍼하며 권육의 무덤에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효조는 예조판서 권육이 65세에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상소하자 그의 고향인 논산지역인 노성에 현감 벼슬을 내렸지만 2년 뒤에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에 효종은 왕명으로 수원에 있는 곰솔 묘목 두 그루를 이곳에 심어주었다고 한다. 

강인한 곰솔 같은 나무가 있는 반면에 하늘하늘하게 여름에 피어 있는 꽃도 볼 수 있다. 

다시 멀리서 곰솔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수령 300년을 훌쩍 넘었으며 이곳에서 있었던 권육의 무덤은 1996년 4월 공주 선영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곰솔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곰솔은 매우 오래되고 큰 소나무로써 생물학적 가치가 크고, 우리 조상들이 자연물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권육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살포시 거닐어 올라가 본다. 

갈산리 곰솔이 있는 곳의 위쪽으로 오면 마을회관이 있고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분들이 이곳에서 자주 모인다고 한다. 곰솔의 잎은 소나무 잎보다 억세며,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 데 비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돌아서 내려오면 두 그루인 곰솔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옆에는 주차공간으로 조성을 해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간에 여유가 있다. 

곰솔의 아래로 와서 곰솔이 가려주는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은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좀처럼 배울 수 없다고 한다. 사고력을 강화하거나 이난으로 폭을 넓히는 데에는 많은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아래서 다시 살펴보니 정말 강인해 보이는 나무다. 효종은 많고 많은 나무 중 곰솔을 하사했던 이유는 소나무는 삶과 죽음을 모두 담고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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