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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6. 2021

욕심(慾心)

예산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오래간만에 찾아가 본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는 현재 가야사가 자리했던 흔적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래전에 보았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가야사의 흔적을 찾기 위한 작업은 처음 보았다. 욕심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가 있다. 자신이 가치를 과대평가해서 많은 것을 바라는 것과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에서 비롯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가지려고 한다. 

가야사라는 사찰은 정말 오래된 사찰이었다. 그 사찰이 있던 자리는 풍수지리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곳이었지만 이곳에 묘를 쓰면 3대가 왕의 자리를 누린다는 속설이 있어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이곳을 모두 불태우고 자신의 아버지의 묘를 쓴 것이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남연군묘는 가야사지 발굴을 위해 무덤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을 발굴 중에 있었다. 역사상에서 흥선대원군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그건 권문세가의 관점이었다.  흥선 대원군은 고종 즉위 17년 전인 1866년 자신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해. 지사인 정만인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의 묏자리를 '두대에 걸쳐 천자가 나는 자리 [二代天子之地]'라는 말을 듣고 그곳에 이장을 결심하였다. 

사람들의 욕심은 결국 자신이 노력한 것보다 자신이 훨씬 많은 것을 누리며 편하게 살려는 것에 비롯이 된다. 그걸 자제하는 사람들과 자세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분이 된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떳떳하게 자신의 일로 무리 없이 돈을 버는데 걸리는 시간은 딱 10년이 필요하다. 과연 10년을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좋은 자리에 묘를 쓴 흥선대원군은 살아생전에는 을사조약, 한일합방 같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들인 고종의 의뭉스러운 죽음과 손자인 순종은 창덕궁에 유폐되다시피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덕혜옹주의 삶은 불행으로 점철되었다. 

가야사라는 사찰은 한 번은 보고 싶은 사찰이긴 했다. 오랜 시간 이곳에 자리했던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없어져버렸다. 임진왜란을 제외하고 조선은 항상 일본에 앞서 있었다. 지금의 일본의 토대를 만든 메이지 천황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특권층인 사무라이 제도를 무너트리면서 봉건적인 막부 체제를 무너트린 반면 흥선대원군은 세도가들의 세력을 위축시켰지만 미래를 보지 못했던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서로가 평등하게 대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기 위해 공작새처럼 날개를 열심히 펼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데 있다고 자꾸 말하는 것이 사람이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조 씨(大王大妃趙氏 : 翼宗妃, 憲宗의 生母)의 명에 따라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자, 이하응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봉하여졌으며 조선 후기 마지막 정권의 힘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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