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다

예산의 헌종의 태실

태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 어머니와 연결된 생명력이다. 그것이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남자와 여자와 평등하게 부여된 것이기도 하다. 조선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胎)를 봉안하는 곳을 지칭하는 용어가 태실이다. 대부분은 시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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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아들인 순조의 손자로 헌종은 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5년 동안 수많은 재해뿐만이 아니라 천주교 박해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등 민심이 흉흉하며 조선이라는 왕조의 끝을 앞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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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고 1836년 남응중, 1844년 이원덕. 민진용 등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는 등 임금을 임금처럼 생각하는 양반의 수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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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의 태실을 올라가는 길목은 사유지를 지나쳐서 옆의 작은 길목으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가지 않는지 거미줄이 정말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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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선왕조의 왕의 힘은 정조 이후로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대왕 태실의 석물을 개조할 때 예조의 당상관 및 감역관(監役官)이 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대왕 태실의 경계는 300보, 왕세자의 태실은 200보로 하고, 이 경계 밖의 수목을 기르는 곳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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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걸어서 올라가 보니 드디어 헌종의 태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헌종은 자신이 사랑했던 경빈 김 씨를 위해 창덕궁에 낙선재를 만들었던 왕이다. 중전의 자리에서 그 세를 누린 것은 효정왕후였으나 헌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은 경빈 김 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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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의 태실은 조금은 색달라보인다. 색을 밝혔던 헌종은 잦은 성관계 등으로 인해 기력이 쇠하여 2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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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은 대개 대석·전석(磚石)·우상석(遇裳石)·개첨석(蓋檐石) 등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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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실을 살펴보면 대부분 거북이 석재 조형물로 많이 만들어져 있다. 헌종은 1827년(순조 27) 7월 18일에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와 신정왕후(神貞王后) 조 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헌종이 14세가 되던 1840년(헌종 6)에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면서 풍양 조 씨의 본격적인 세도가 시작되었다. 순원왕후 김 씨는 헌종이 죽자마자 옥새부터 찾았다. 그리고 영조의 유일한 혈손인 전계군(全溪君,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아들)의 아들 이원범(李元範)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후사를 잇게 했는데 그 사람이 강화도령 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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