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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5. 2021

통영의 김춘수 생가길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하루하루가 그냥 흘러갈 뿐에 만족할 뿐이다. 일부의 사람은 존재의 본질과 의미와 더불어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하는 의미를 담아 동시에 인식되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고민하기도 한다. 시인이나 문학가들은 상시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통영이라는 도시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유독 시인과 소설가가 많이 배출되었다. 

아침에 만난 통영의 김춘수 거리에서는 꽃이라는 시를 만나보고 싶어 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자주 접해본 시였지만 사람의 근본적인 속성을 볼 수 있는 시였다. 무엇이든지 되고 싶고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이름으로 불려주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 잘 그려냈다. 오래전에는 살기 힘든 사람들이 살았던 통영의 동피랑과 서피랑은 이제 재해석되어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통영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춘수 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벤치 형태뿐만이 아니라 벽화로 만들어져 있다. 김춘수는 1945년 통영에서 유치환·윤이상·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 결성, 예술운동을 펼치고 시작활동을 본격화하였다.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 1948년까지 근무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교사로 전임하여 1951년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박스 옆으로 김춘수의 거리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가 70년 전에 보았던 것처럼 통영의 바다는 온통 바다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김춘수는 1942년 일본의 가와사키 시 부두에서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하여 불경죄로 세다가야 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모르고 살아도 될 것을 아니면 잊어도 살아도 될 것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차량도 진입하기 어려운 곳은 보통 옛날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차량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 도시계획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택지가 이렇게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의미 있는 관광자원이 되어 사람들의 방문을 이끌어내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고향은 이곳 통영이고 그곳은 동백으로 유명하지요. 시인은 동백을 ‘산다화’라 부르며 많은 시를 쓰기도 했다.  김춘수가 말하는 꽃은 사물의 존재에 맞게 부여되는 언어, ‘시(詩)’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춘수의 거리를 걸어서 조금만 나와도 통영의 항구를 볼 수 있다. 짙푸른 바다를 보면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다시 곱씹어보면 잊히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진다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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