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
비극적인 일로 인해 모두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경덕은 먹을 것이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배가 고픈지 차와 샌드위치가 입속으로 들어갔다. 입속에서 샌드위치 속에 들어간 베이컨의 씹히는 맛이 느껴졌다. 지수는 일어나서 미니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작은 생수통을 하나 꺼내서 마셨다. 연희는 펜션 여주인과 눈빛으로 그냥 이 순간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동의를 얻은 듯 차를 마셨다. 지욱은 답답한 듯 일어나서 거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가 침묵을 깼다.
"여자분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고 우선 남자분들이 동욱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줄래요?" 움직임을 멈춘 지욱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건가요? 누가 죽여도 될 만큼 원한을 샀냐고 물어보는 건가요?." 남자는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아니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경덕이는 눈치를 보듯이 입을 뗐다.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솔직히 고등학교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요. 아버지도 중견기업 대표라서 참 바빴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래서 아마 엄마가 대부분 챙겨준 걸로 기억해요. 중학교 때는 학폭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는데 돈으로 막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학폭이요? 심각한 건가요?"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좀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잘 끝났어요. 제가 중학교를 같이 다녀서 알고 있어요." 지욱이가 참견했다.
"그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경덕이나 제가 알기로는 술은 많이 먹고 잘 놀기는 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나름 여자들에게 인기도 있었고요."
"여기 있는 여자분들과는 별다른 관계는 아니었나요?"
"예 여기 있는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알던 애들이라. 그 이후로 몇 번 만난 적도 없었어요."
말을 들은 남자는 찻잔을 들고 잠시 유리창 너머의 비가 쏟아지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없고 인간관계가 꼬일 때가 있다. 갈등의 발단이 단순한 오해와 태만에 불과했다고 해도 살인까지 일어나는데 그것이 원한이라면 어떻게 될까. 내리는 비를 한참 동안을 바라보고 있었던 남자는 마음이라도 먹은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여보. 여기 펜션을 예약한 분이 저기 계신 지수 씨라는 분이 맞지?" 말없이 앉아 있던 펜션 여주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 씨 이곳을 오자고 말했던 것이 혹시 수경 씨 아니에요?" 지수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수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오래간만에 모이는 것은 어떠냐고 그랬거든요."
"그럼 수경 씨 왜 저 세명이어야 했을까요." 수경이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했다. "꼭 저 세명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그냥 친했던 친구들이라서 그냥 말해본 거예요."
"맞아요. 나름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을 하거든요." 연희가 덧붙였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최근에 수경 씨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견딜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요." 그의 말에 수경은 잠시 침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수경 씨가 할 말이 있다고 보여요. 저는 지수 씨가 좀 어두워보였는데 수경 씨를 어느 순간 보았을 때 밝음 속에 깊은 어둠이 보였다고 할까요." 수경은 한 숨을 크게 쉬었다.
"3주 전이었어요. 제 동생 수연이는 연년생이었어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자궁의 고통으로 수연이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상태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여러 명에 의한 성폭행에 의했다는 거였고요. 저에게 말은 안 했지만 수연이는 그 이후로 남자와 관계를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녀의 말이 나오자 모두들 말문을 닫았다. 연희와 지수는 깜짝 놀란 듯 수경의 손을 잡기도 했다. 수경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연년생으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어도 저는 수연이에게 그 내용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이번에야 들을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걸 주도했던 남자가 저 세명중에 한 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약을 먹여서 취한 상태에서 그녀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건 그 남자가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을 좋아했으며 그날도 마치 유희처럼 그 노래를 틀어놓고 그녀를 성폭행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찾기로 했죠. 제 동생은 못하지만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수와는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는 관계였으니까. 오래간만에 여행을 가자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