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변화
"오빠 지금보다 차라리 충동적이었던 전이 훨씬 나았어." 은혜는 답답한 듯 경일에게 토로했다. "언제는 사소한 것에 흥분하는 것이 충돌을 조절하는 뭐였더라? 아!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서 그렇다며. 그런 것도 없어지고 좋잖아." "사람이라는 것이 중간이 있어야지. 지금 모습을 보면 이전의 모습과 극단과 극단이잖아. 오빠를 보면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뉘앙스가 없어진 사람 같아."
한 숨을 깊게 내쉰 경일은 앞에 있던 아보카도를 갈아서 만든 음료를 마셨다. 컵을 들다가 밑에 있던 냅킨이 떨어지자 무릎 높이의 로봇이 와서 조용히 빨아올린 후 지나갔다. 경일은 뒤로 사라지는 로봇의 뒤를 바라보았다. 이제 서비스업에서도 사람이 많이 사라졌다.
"오빠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잖아." 그녀의 말에 경일은 귀찮다는 듯이 소파에 깊게 몸을 푹 파묻었다. "우선 잠깐 생각 좀 해보자. 뭐가 그렇게 조급해? 지금 당장 결론을 내야 될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좀 바뀐 건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잖아." 경일의 말에 다시 말을 하려다가 은혜는 카페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경일은 생각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결혼을 하는 평균 나이가 40을 넘어버린 지금 결혼율도 출산율도 이제 의미 없는 수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법도 바뀌어서 NG세대가 있기에 굳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애를 만들 필요성도 없어 보였다. 음료를 다 마신 경일은 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은혜는 말했다.
"왜? 이제 할 말이 생긴 거야?"
"아니 딱히 할 말이 있지는 않아. 그냥 이렇게 있어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뇌 영역에서 전전두엽보다는 편도체가 많이 활성화될 때 사람의 표정에 대한 해석이 부정확하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났다. 즉 감정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성에게 싫증이 난 것과는 다른 느낌이랄까. 묘하게 다른 결이 느껴졌다.
사방이 스크린으로 둘러싸서 시시각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물은 매우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호텔의 1층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호텔 1층의 로비는 4층 높이의 공간이 개방감 있게 열려 있었다. 호텔에는 7층에 결혼식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제 친인척과 일부 친구들만 참석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참석인원이 50명이 넘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1층 로비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가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7층으로 이동시켰다. 신부대기실에서는 신부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는데 신부는 무표정하게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는데 밖에서는 신랑이 친인척을 맞아서 인사를 하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얇은 패드 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신랑에게 다가가서 신부와 사진을 찍어야 된다고 말하자 같이 신부대기실로 이동을 했다. 얇은 패드지만 렌즈가 웨이퍼의 굵기로 들어가 있어서 과거 광학렌즈 이상의 퀄리티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바로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어서 훨씬 편해졌다. 환한 얼굴의 신랑과 달리 신부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신부에게 미소를 지어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억지웃음을 지었는데 과거 공포영화에서 억지웃음을 짓던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식장의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사회자에 의해 식이 진행되었다. 이제 주례가 없는 것이 결혼식장의 풍경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앞에 있는 차를 마시면서 이날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화로 주변을 장식했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꽃의 향과 다른 차이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신랑과 신부가 입구에 섰다. 사회자가 둘의 결혼을 축하는 박수를 요청하자 하객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신부는 뒤로 돌아서서 뛰어나갔다. 그녀의 식장 탈출은 영화 런어웨이 브라이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가슴 뛰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잃어버린 바이러스 때문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