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장미의 여자

죄의 유효기간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펜션을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일상에서 잠시의 여유를 생각했었을 뿐이다. 경덕이는 그 아픔의 크기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범죄라는 것에는 동의를 했지만 고등학교 때 일어난 일이 이제야 다시 언급이 되었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인 복수를 통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지수는 이제야 그녀가 여행을 가자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고등학교 때 그녀는 그 친구들과 별로 친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자 친구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어본 적은 없었나요?" 남자가 물었다. 경덕이는 지욱이를 통해 동욱이를 알았기에 학창 시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지욱이는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했다. "저도 동욱이랑 친하기는 하지만 그 다른 친구들과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뭐 여자들과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었다는 것은 얼핏 들은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것이 성폭행 같은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연희는 친구들의 말을 듣다가 남자에게 조심히 물어보았다. 남자가 말하기 전에 지욱이가 먼저 끼어들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일까? 누가 죽였는지도 알았고 여기 있는 사람이야 죄가 없잖아."


"그럼 동욱이가 한 짓이 이 사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야?" 지수가 화가 난 듯 지욱이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일이 벌어졌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잖아. 그런 걸 미리 예측하지 못한 지수 탓도 있는 거 아냐? 그럼 저기 있는 수경이도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우리도 이게 뭐야. 기분 좋게 놀러 왔다가 밤에 잠도 못 자고 지금 이 꼴이 말이야." 연희는 한심하다는 듯이 지욱을 바라보았다.


"지수야 성격이 좋아서 너희들과 친분이 있었지만 나는 솔직히 학교 다닐 때 너희들이 별로 였어. 아니 경덕이는 착하기는 해." 연희는 너희라고 했다가 경덕이를 바라보며 뒤에 말을 붙였다. 경덕이는 앉아서 그냥 왼손을 올려서 괜찮다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가 수경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그게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몰라.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어. 그런 상처를 줬다면 미리 용서를 구했다면 7년 후에 이렇게 안됬을지도 모르지."


경덕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맞아.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은 일이었지 그때가 학생이라 소년법의 적용을 받기에 가볍게 처분받았을지도 모르긴 해. 그런데 그거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법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간음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이고 특수가 성립되면 15년이 됩니다. 성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0조는 19세 미만 대상 간음죄, 또는 강제추행죄 등에 대한 DNA 증거 등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성폭행 공소시효를 다시 10년 더 연장할 수 있습니다. " 남자가 경덕이의 물음에 답을 했다.


"그러면 뭐해요.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리 사람은 죽었고 수경이는 아무리 정상참작을 해도 실형을 면하기 힘들 거 같은데요." 연희는 힘없이 말을 했다. "수경이가 사실대로 그냥 말해줬으면 어떻게든 벌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어쩌니 수경아." 지수는 수경이를 안아주었다. 남자는 일어나서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5월의 날씨가 비가 많이 내려 선선하기는 했지만 불을 피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불길이 어느 정도 오르자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내서 그 속에 던져 넣었다. 남자는 펜션 여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수경 씨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가 있어줄래요?" 팬셔 여주인은 힘이 없이 앉아있던 수경이를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수경 씨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수경 씨가 가져온 주사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제 바꿔서 넣어두었습니다. 심장박동을 느리게 만드는 약물이 들어간 주사였습니다. 남자 친구들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심장박동을 제대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았는 데다 심장박동이 느리게 만들었으니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수면제를 녹인 물을 먹여두었기 때문에 푹 자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남자는 그 주사기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지욱이와 경덕이는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았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지 않은 지욱이가 맥박이 느껴지지 않아서 죽었다고 먼저 판단을 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남자가 죽었다고 말했기에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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