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소녀
꿈이 무엇인가 그게 무엇인지 이제 기억하기도 쉽지않다. 살아가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될쯤 노랗고 빨간 꽃잎이 하나 두 개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봄꽃이 떨어지고 무더운 더운날 여름꽃이 피어날 때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던 보호자인 엄마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소녀에게 남겨준 것은 어린 두 동생과 큐키뿐이었다. 엄마는 항상 소녀에게 꿈을 잘 간직하라는 말을 했었다. 태어나면 1년에 하나씩 꿈이 쌓이는데 간직한 꿈이 모두 없어지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기에 소중하게 간직하라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어린 두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13살의 소녀에게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소녀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구워준 쿠키를 13개를 챙겼다. 비싸지도 않은 쿠키지만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꿈의 수만큼 팔기로 했다. 꿈마다 얼마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대신 자신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쿠키는 13개를 챙겼지만 12개까지만 팔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집에 있는 오래된 달력을 뜯어서 뒤에다가 글을 썼다. "꿈을 팝니다. 값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대신 꿈을 들려주세요."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광장에 나온 소녀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 크기 않은 보자기를 앞에 펼쳐놓고 쿠키를 13개 꺼내놓았다. 그리고 옆에다가 달력을 접어서 만든 문구를 보기 좋게 놓아두었다. 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꿈을 사겠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던 그녀는 쿠키를 먹고 싶어 졌다. 쿠키를 팔아서 집에 가면 동생들을 먹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쿠키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소녀는 쿠키 하나의 포장을 뜯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쿠키를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엄마가 쿠키에 뭘 넣었는지 몰라도 광장은 집안으로 변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벽난로가 거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거실의 중앙의 테이블에는 케이크가 놓여 있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아빠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소녀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두 동생도 환하게 웃으면서 빨리 오라는 듯 말하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게 꿈인가란 생각을 할 때 자신의 손에 있던 쿠키는 모두 없어졌다.
아지랑이처럼 환상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광장으로 소녀는 돌아왔다. 너무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쿠키의 포장을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손과 다리가 상당히 길어져 있었다. 앞에는 거울이 있는데 거울 속의 그녀는 엄마와 많이 닮아 있었다. 색다른 자신의 모습에 어리둥절할 때 방문이 열리면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오늘 우리 뭐할까?"
여자 아이가 말했다. 남자아이는 여자 아이를 밀치면서 말을 했다.
"당연히 놀이공원을 가야지."
그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 소녀의 앞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얘야 쿠키 하나에 얼마씩 하니."
소녀는 쿠키의 값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몸이 불편했지만 엄마는 쿠키나 먹을거리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주셨기 때문이었다.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면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쿠키 하나에 5,000원이면 충분하겠지?"
"예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쿠키를 이 자리에서 바로 먹어야겠네. 꿈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말이야."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자신이 본 것 같은 장면을 볼 것이라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소녀의 손에 5,000원을 쥐어주고 할아버지는 쿠키를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어떤 꿈을 보았을지... 쿠키를 다 먹은 할아버지는 지긋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애야 나는 내 죽음을 보았단다. 그런데 슬프지가 않았어."
소녀는 엄마가 죽었을 때 슬펐는데 자신의 죽음을 보고도 슬프지 않았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가 가고 나서 여러 명이 찾아와서 쿠키를 샀다. 1,000원을 내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돈 많아 보이는 우아해 보였던 중년의 여성은 50,000을 내기도 했었다. 쿠키를 먹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할아버지처럼 만족해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며 이 따위 쿠키가 있냐면서 소녀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다. 어떤 커플은 쿠키를 두 개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쿠키를 먹은 여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속셈이 있었구먼."
남자는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볼 필요 없어. 잠깐이지만 당신과의 미래를 보았으니까."
소녀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잘 몰랐지만 꿈이란 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꿈은 꼭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꿈에는 욕심도 들어가 있었고 탐욕도 있었다. 남을 속이려는 속임수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는데 희망을 본 사람은 없었다. 소녀의 쿠키는 이제 두 개만 남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눈에 보기에도 정말 이쁜 여자가 앞에 앉았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꿈을 모두 이룬 것만 같은 모습의 여자였다. 무더운 날씨에 땀 때문에 온몸이 젖어서 소녀는 힘이 없어 보였다.
"이 쿠키 하나에 얼마씩 하니?"
"가격은 저도 잘 몰라요. 주고 싶은 대로 주시면 돼요."
"그래도 얼마쯤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진짜예요. 주고 싶은 만큼 주시면 돼요.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해주시면 되는 거예요."
"그래? 독특한 아이구나."
생김새에 비해 그녀는 수수해 보였다. 장신구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화려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보아왔던 엄마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여유도 느껴졌다. 소녀는 저런 사람은 어떻게 살까 궁금해졌다. 적지 않은 돈을 낸 그녀는 쿠키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었다.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긴 시간을 쿠키를 먹는데 보냈다. 쿠키를 먹는 그녀의 표정은 환희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자신이 행복하지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쿠키를 다 먹은 그녀는 깊은 마음을 간직한 것 같은 눈으로 소녀를 보았다.
"넌 참 이쁜 아이야. 난 너를 보았단다.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짤막하게 말을 남긴 그녀는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소녀에게는 쿠키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쿠키 하나를 손에 쥔 소녀는 일어나려고 했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쿠키 두 개의 뜨거운 뙤약볕에 탈진이 된 것이었다. 소녀는 쿠키 하나를 손에 쥔 채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옆으로 쓰려졌다. 대낮에 쓰려진 소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냥 광장에서 잠을 자고 있으려니 생각을 하고 지나쳐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를 누군가가 두 팔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소녀는 눈부신 햇살 속에 누군지 보려고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본 그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녀의 눈은 그리고 천천히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