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이렇게 넘어갈까요. 아니면 죄와 벌의 길을 따라갈까요." 남자는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남자의 말에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적막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연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수경이에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죄는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경이가 살인자가 되지 않은 것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복수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에요."
"어떻게 죄를 묻는다는 거야? 그냥 수경이 동생의 말에만 의존해서 7년 전의 한 행위를 가지고 동욱이를 고소할 수 있다는 거야? 나도 여자의 입장은 아니지만 수경이 아니 그 동생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만 방법이 별로 없잖아." 경덕이는 되물었다.
"아무리 학생 때라고 하지만 그런 짓을 해놓고 지금까지 용서 한 번도 안 구했을까. 나는 남자들의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어." 지수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경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것을 넘어서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동욱이의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야 고등학교 다닐 때 굳이 말하면 중간지대에 있었지만 좀 논다는 애들의 과한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여러 번 있었으니까." 지욱이는 자신의 생각대로 말은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끔씩 동욱이가 과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렴풋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들은 기억이 나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너희들은 학생 때의 일이고 시간이 지났으니 이것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벌을 받았다고 해도 피해자는 그 기억이 주홍글씨처럼 선명하게 가슴속 아니 수경이 동생의 경우 몸에도 남아 있잖아. 이건 성감수성의 차원이 아니라 이건 범죄야." 연희가 생각하기에 남자 동창들의 말이 너무 차분하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래 다행히 수경이가 범죄자가 안된 것까지는 좋아. 그래! 동욱이가 한 행동도 용서받을 수 없다 치자. 그럼 어떻게 죄를 물을 건데. 수경이의 동생이 임신이 안 되는 것이 동욱이와 당시 친구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거냐는 거야." 경덕이는 답답한 듯 토로했다.
남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때 펜션의 여주인이 들어와서 남자에게 귓속말로 테라스에서 수경이와 대화했던 내용을 말해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다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베란다로 나갔다. 친구들은 남자가 나간 뒤에도 적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갔다. 이들의 대화는 해결책이나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도돌이표 논쟁처럼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테라스로 나가서 수경과 대화하던 남자가 들어왔다.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이들은 조용해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제가 듣기로는 수경 씨의 여동생이 수면제등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수경 씨 또한 그런 비슷한 시도를 한 거 같고요. 그 고통이 어떻지는 온전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모두들 그게 범죄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해결책이 있는데요. 지욱 씨와 경덕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욱과 경덕은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쳐다보았다.
"이미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한국은 법정 증거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니 강요나 강박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신의 진술이 필요하겠죠. 아까 보니 동욱 씨라는 사람이 술을 참 좋아하더군요. 이 솜을 이용하면 동욱 씨의 의식이 돌아올 겁니다. 술을 마시면서 7년 전의 일을 언급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끌어내면서 그 대화를 녹음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그 녹음된 파일을 가지고 동욱 씨랑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녹음파일은 수경 씨에게도 줄 생각입니다."
의외의 제안에 경덕과 지욱은 고민이 깊어졌다. 친구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경덕과 지욱은 구석으로 가서 남자의 제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미성년자일 때의 일이었고 7년이 지난 지금 자수를 한다면 생각만큼 크게 벌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해볼게요. 저도 이 사실을 안만큼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욱이도 그때는 치기 어린 마음에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수경이와 그 동생의 고통을 생각하면 친구로서의 책임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욱이는 경덕이와 나름의 합의를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좋습니다. 이 상황을 잘 마무리하고 더불어 동욱이라는 친구의 진심 어린 용서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연희와 지수는 테라스로 가서 수경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다. 지욱과 경덕이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동욱은 그때 시기의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대화는 고스란히 녹음이 되어 남자에게 전달이 되었다. 남자는 그 대화 내용을 가지고 동욱과 결론을 지었다.
하루 뒤 여행을 왔던 친구들은 임시로 가설된 다리를 건너서 떠났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알 수가 없었다. 매주 여행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일상의 일부에 속해서 살았던 남자의 폰에 한 달쯤 지나서 문자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는데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고맙습니다. 저 수경이에요. 그 친구가 자수를 하고 청소년 시기의 범죄라 징역형까지는 가지는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빌기 위해 제 동생을 찾아왔었어요. 용서를 하기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무튼 감사해요."
그녀의 문자를 받은 남자는 죄와 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법도 있고 형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가치가 같음을 고민한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6월 중순을 넘어 한 해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