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시작
#삶의 시작
바닷속에서의 삶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어렵게 흘러가지도 않았다. 1주일 안에는 바다로 들어가야 다리를 지탱하는 칼슘과 같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에 육지에서도 걸을 수 있었다. 우연하게 나온 육지에서 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알 수 있었는데 바닷속에 있을 때는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다리에 필요한 에너지가 채워졌지만 육지에서는 쉽게 빠져나갔다. 육지에서의 삶은 그녀가 느끼기에 삶은 미묘하게 혹은 디테일한 부분이 쌓이면서 바뀌어갔다.
그녀는 특별한 존재라던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육지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특이했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성은 두 개로만 결정이 되어 있었다. 얼마 안 된 시간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헤어지기도 했다. 바닷속에서의 사람과 비슷한 존재도 있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바다에서 처음 나왔을 때 누군가가 벗어놓은 옷을 입고 도시로 나가보았다. 우연하게 본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거울 속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거울을 벗어났다. 하체가 완전히 가려지지 않으면 물속에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하반신이 녹아내리듯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바다에서 먼 곳을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물속에서의 호흡도 예전처럼 할 수가 없었다. 마치 호흡하는 방법을 잃어버려 퇴화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민물에서의 호흡도 인간과 같았다. 그녀는 여러 번 육지로 나오면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두었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조그마한 섬의 안쪽 절벽에 자신의 옷이나 물품을 그곳에 챙겨두었다.
인간들이 말하는 글이라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은 단어도 있었지만 조금은 특이한 것들이 있었다. 소신이라던가 감정, 사랑과 같은 것들은 중요한 것 같아 보이는데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가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했는데 생김새 덕분인지 무시하는 사람보다 호감을 가지고 대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의 말에는 이상한 리듬감이 있었다. 리듬감이 없는 사람들보다 리듬감이 있는 사람들이 더 적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리듬감을 사투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주로 머무는 육지는 통영이고 불리는 곳이었다.
통영의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들과 가끔씩 소통을 했다. 물고기들도 최근에 사람들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통영의 시장에 가면 그 좁은 공간에서 물고기들은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물고기들은 바다에 풀어주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그걸 도둑질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가끔씩 찾아가서 물고기들에게 바닷속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상인이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에서 물건을 가져오던 젊은 남자는 그런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물고기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말은 못 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외모가 어딘지 모르게 신비했다. 태고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딱 그녀와 같이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어깨 밑까지 흘러내렸는데 짙은 검은색 속에 금빛이 가끔씩 보이기도 했었다.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번 그녀의 눈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눈 속에는 짙푸른 바다를 담아놓았다는 느낌을 받고 짜릿한 전율까지 느끼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