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부고
부고
"기뻐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가지만 저의 일부를 누군가는 나눠가지게 되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부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동이라는 지역에서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았다. 그녀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부고를 써주는 일을 했었다. 그녀의 삶은 하동을 흐르는 강물의 여정과 닮아 있었다. 듣기로는 그녀는 자신의 부고를 5년 전에 써놓았다고 한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부고를 썼는데 5년이나 더 살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하며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페 안에 만들어진 그녀의 마지막은 그녀가 살아생전에 돌아다녔던 공간에 대한 흔적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카페의 한 켠에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짜인 5월 16일 15:30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딸에게 부탁해서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와 디저트, 커피, 녹차 같은 것들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기존의 장례식장과 분위기가 다르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을 주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다시 그녀의 부고를 이어 읽어본다.
"제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솔직히 잘 나지 않습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은 5살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청학동에 사셨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옛날 방식의 교육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청학동에서 살면서 아이들과 가재를 잡으면서 놀고 같이 모여서 수박도 먹었던 기억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부모님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특이하셨는데 하동에 딱 한 명 외국인이 있었는데 일찍이 청학동에 들어와서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아니 지금은 초등학교죠. 아무튼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그분에게 저의 교육을 맡기셨습니다. 외국인인데 더 한국인 같았던 분이면서 철학적인 분이었습니다. 생김새가 다르긴 했지만 저에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르치는 것보다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 외국인 아니 이름을 말해야겠죠. 윌리엄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영혼과 육체와 일시적인 결합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죠. 참고로 윌리엄이 세상을 떠날 때 부고를 제가 썼습니다. 희한하게 윌리엄은 외국인인데 소학에 대해서 참 많이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서두가 길었던 것 같습니다. 윌리엄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저의 원래 성향이 그랬는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다가 글에 나름의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님이나 다른 분들도 제가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해서 알고 저에게 많은 책을 사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부고를 쓴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잔병치레를 하셨던 어머니의 죽음에 부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던 분이라서 부고를 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영원히 사람이 떠난다는 생각에 너무 많이 울면서 부고를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까이에서 보면서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때론 같이 밥도 먹고 하동 5일장에 같이 나가기도 했던 분들의 부고를 쓰게 되었는데요. 살아 있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재의 그물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겠죠.
중략...
많은 분들을 만났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고 그 삶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도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되겠죠. 강물의 시원이 있듯이 여정은 시장되고 여정의 끝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다시 증발되어서 언젠가는 다시 시원으로 돌아가는 때가 있겠죠. 아무쪼록 강물의 여정의 끝에 이른 저를 만나기 위해 오신 분들 행복하시길 바라고 차린 것은 없어도 제가 특별히 로스팅한 커피만큼은 투덜거리지 말고 맛있게 마셔주세요."
그렇게 그녀의 부고는 끝이 났다. 그녀의 카페는 정말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많지 않은 좌석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곳이었다. 이날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을 모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국화꽃을 한 송이씩 그녀의 사진 밑에다가 놓고 갔다. 그녀가 그렇게 자랑하던 커피를 한 잔 내려 이쁜 찻잔에 담았다. 카페의 문을 열고 커피 향을 맡으면서 잠시 하동의 산을 바라보았다. 산의 허리에는 춤추듯이 흘러가는 듯한 운무가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