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강물의 여정

하동 동정호

그 아저씨를 아니 최익호를 처음 만난 것은 10살쯤 되었을 때였다. 하동군에서 오래도록 터를 잡고 살았던 그는 감나무 농장을 하고 있었다. 옛날 일제강점기에는 다른 사람의 토지를 농사를 짓는 소작농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소작료를 그나마 잘 챙겨준 덕분에 자신만의 감나무 농장을 일굴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그를 보면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가끔씩은 마을로 찾아오는 어름 과자 장수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주기도 했었다.


사는 곳에서 거리가 있었지만 가끔씩은 자전거의 뒤에 태워다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자전거가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악양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보면 평사리에 자리한 부부소나무도 거쳐가기도 했다. 참 그 사람은 일찍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것이 낙이라고 했었다.


"아저씨는 무엇이 제일로 좋아요?"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여기도 참 좋기도 하고 말이야."

"악양면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응 난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좋고 계절이 변하는 것도 좋아."


참고로 악양면은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의 배경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당시에는 박경리가 집필을 하지 않았을 때다. 전형적 농촌마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설 속의 무대인 최참판댁의 집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과 마을 구석구석에 소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국민학교 나왔어요?"

"응? 국민학교 4학년까지만 다녔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배우고 싶었을 때가 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

"그렇구나. 그러면 앞으로 더 배워야 할까요? 저는 그 푸른 눈의 윌리엄에게 소학을 배우고 있어요."

"소학. 들어본 적은 있지. 외국인인데 신기한 사람이네 그런 어려운 것도 알고 말이야."

"그 아저씨도 자연이 좋대요. 한국이 좋고 하동이 좋아서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대요."

"나도 몇 번은 본 적이 있지만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얼마나 갔을까. 하동의 동정호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버드나무가 동정호로 머리를 드리내리우고 있었다. 아저씨는 자전거를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내려다 주었다. 조금 남은 얼음과자를 빨아먹으면서 동정호의 물결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 옆에 앉아서 주변에 있는 돌을 들어서 호수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아저씨가 돌을 집어서 던지는 것을 보니 나도 하고 싶어졌다. 먹던 얼음과자를 모두 임에 넣은 뒤에 던지기에 좋은 돌을 찾았다. 있는 힘껏 호수로 돌을 던졌다. 돌이 호수 면에 닿는 자리를 중심으로 원형 모양의 물결이 퍼져 나가는 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는가를 지켜보았다.


"아저씨 제가 돌 던진 곳에서 그림 문양이 저 멀리까지 가요."

"그러네 아저씨가 던진 돌보다 더 멀리까지 가네."

"만약 호수가 이것보다 훨씬 크다면 더 멀리까지 갈까요?"

"강물이 아니라 호수라면 아주 멀리까지 갈지도 모르지."

"왜 강물은 그렇게 멀리까지 못 가는 거예요?"

"강은 거센 흐름이 있거든. 우리가 던진 돌보다 더 힘찬 흐름이 있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멈추지 않아서 사라지는 거야."

"아 그렇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강물의 여정처럼 흘러가서 끝이 나는 것일지도 몰라. 사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죽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니까."


아저씨의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많았었다. 궁금하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답 대신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갔다. 얼음과자 덕분에 끈적해진 손을 동정호의 물에 씻어내고 자전거의 뒤에 다시 올라탔다. 아저씨의 손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에게 맞아서 생겼다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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